[광화문]홍콩-선전 & 서울-개성
북한이 최근 개성공단을 경제특구로 공식 지정했다. 북한은 지난 91년 나진-선봉에 이어 올해 신의주를 특구로 지정했으나 양빈장관의 구속 등으로 유명무실한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개성특구 지정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지리적으로 서울과 가까운 개성은 홍콩-선전의 복사판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홍콩 도심에서 선전까지는 32km, 서울에서 개성까지는 약 60km다. 1982년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과 철의 여인 대처는 홍콩반환에 합의했다. 당시 덩은 당장 홍콩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15년 후로 연기했다. 곧바로 홍콩을 접수한다면 대륙인들이 자유와 직업을 찾아 대거 홍콩으로 몰려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1997년 7월1일 반환 당시 기자는 현장에 있었다. 그 때, 홍콩 서민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정치적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홍콩으로 몰려온 대륙인에게 그들의 직업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이미 홍콩에는 상당수 대륙인들이 들어와 있었다.
5년의 시간이 흐른 2002년, 상황은 정반대다. 대륙인의 홍콩 행렬은 끊기고 홍콩인의 대륙을 향한 엑소더스는 한창이다. 선전의 물가가 홍콩의 1/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홍콩인은 소비나 주거를 거의 선전에서 해결하고 있다. 남성은 홍콩의 예쫑후이(夜總會,나이트클럽)가 아니라 선전의 예쫑후이를 이용하고, 여성은 피부 마사지 및 손톱 손질을 선전에서 한다.
돈은 홍콩에서 벌고 소비는 선전에서 하는 패턴이 정착된 것이다. 이로 인해 반환이후 홍콩 경제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이제 홍콩은 대륙인에게 더 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다. 따라서 대륙인이 홍콩에 갈 이유도 없어졌다. 덩샤오핑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개성이 제2의 선전이 될 수 있을까. 만약 북한이 붕괴된다면 ‘경제난민’이란 핵폭탄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떨어져 도시기능은 순식간에 마비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 개성을 선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면 북한의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통일 이후 서울집중을 억제하는 획기적 방책이 될 것이다.
중국의 특구가 성공한 것은 개혁개방 초기, 이른바 삼포자본(三胞資本, 대만 홍콩 마카오 동포의 자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를 종자돈으로 중국은 개혁개방이란 열차에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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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슈퍼맨으로 불리는 허치슨 왐포아 그룹의 리카싱 회장은 80년대 초반, 다른 기업인들이 공산당의 의도에 의심을 품고 있을 때, 과감하게 대륙투자에 나섰다. 결국 그의 베팅은 대박을 터트렸다. 그는 중국 동남연해 도시의 항만 개발권을 독식, 스스로를 재신(財神)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상해 출신인 그는 당시 홍콩 기자들의 “공산당이 재산을 몰수하면 어쩔거냐”는 질문에 이같이 대답했다. “재산을 뺏겨도 결국 내 고향에 환원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