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쌀값,올리든지 말든지

[광화문]쌀값,올리든지 말든지

김영권 부장
2002.12.16 13:53

광화문>쌀값,올리든지 말든지

 쌀이 넘쳐 쌀소주가 나오더니 이제는 소나 돼지에게도 쌀밥을 먹여야 할 처지다. 정부는 올해 주체하기 힘든 재고미를 사료용으로 풀려다가 막판에 북한 지원용으로 돌렸다. 서해교전으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았다면 사료용 쌀 방출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수매한 쌀을 4~5년 창고에 묵혔다가 가축들에게 거저 먹이는 장면을 보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얼마전 양곡유통위원회는 내년도 추곡수매가를 올해보다 2% 인하하든지,아니면 3% 인상하라는 복수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우선`올리든지 내리든지 맘대로 하라'는 게 말이 되는 건의인지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그것도 농정의 최대 핵심인 쌀값을 정하는 농림부장관 자문기구에서 그랬으니 할 말이 없다. 이러니 우리 농정이 갈팡질팡하는 것도 당연하다.

 설상가상 대선이 초읽기에 몰리면서 농정을 둘러싼 정치논리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달 농민대회에서 계란세례를 받은 노무현 후보는 어떻게든 쌀시장을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 대회 참석을 회피한 이회창 후보라고 다를 바 없다. 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결사적이다.

 이들이 쌀시장을 지키겠다고 큰소리치는 건 자유다. 그러나 그것이 지키지 못할 약속이라면 어떻게 책임 질 것인가.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쌀 시장은 무조건 우긴다고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때 제네바에서 혈서를 쓰고 할복 자해를 하면서도 개방(최소시장 접근)을 막지 못한 게 쌀시장이다.

 시장논리대로 하려면 우리는 쌀값을 자꾸 떨어뜨려 국제시세에 접근시켜야 한다. 우리 쌀값은 지금 중국산보다 9배나 비싸다. 쌀시장을 열고 상한선인 500%까지 관세를 매겨도 중국산 쌀이 훨씬 싼 것이다. 그런데도 양곡유통위는 쌀값을 올리라고 하고, 정치인들은 쌀시장을 지키겠다는 인기발언을 남발하고 있다. 쌀이 남아돌아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인데 쌀값을 더 올려도 좋다니 양곡유통위는 정말 강심장인 모양이다.

 지난해 양곡유통위는 수매가를 내리라고 건의했다가 정부와 정치권이 동결로 응수하자 총사퇴 했다. 내리라고 해도 함부로 못내리는 게 현실인 것이다. 나는 쌀값을 포함한 농업문제는 시장논리만 가지고 풀 수 없다는데 동의한다.

환경오염의 주범인 선진국들은 이제 자기들이 깨끗하다며 다른 나라에 대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라고 으름짱을 놓고 있다. 농산물시장을 열라는 압력이 꼭 이와 같다. 제국주의 시절 후진국을 수탈해 자기는 시골 구석구석까지 풍요롭게 가꿔놓고 뒤늦게 다른 나라 뒷다리를 거는 꼴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시장개방의 폭과 속도를 조절하면서 우리 농촌을 선진화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개방이고 시장논리라면 농민들에게 이를 설득시키는 게 먼저다. 쌀값을 떨어뜨리고 시장을 열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지 못하면 제대로 된 농정을 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쌀값을 올리면서 농민들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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