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신뢰
요즘처럼 신뢰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온 때는 없었던 것 같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그런 때이라서인가. 얼마전 새로운 지도자를 우리 손으로 뽑았기 때문일까. 최소한의 믿음마저 앗아버린 정치판이기에 그만큼 새 지도자에 거는 기대가 큰 까닭인가. 물론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가족이, 친구가 몸담고 있는 모든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일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기반이 되고 존중되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은 것은 모두의 한결같은 바램일테니까.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내 자신부터 먼저 그런 비난을 받아야겠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천하통일을 완성한 주인공. 일본의 근세 봉건제 사회를 확립한 뛰어난 정치가이자 경영자. 일명 너구리 영감. 복잡한 성격과 행동의 소유자 등등.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그에 대한 색다른 해석을 내놓기 위해서 도쿠가와를 들먹이는 것은 아니다. 그럴 밑천도 없다. 다만 도쿠가와 막부가 260여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기반중의 하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신뢰에서 비롯됐다는 그런 평가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 도쿠가와는 그것을 몸으로 보여줬던 것 같다. 그랬다지 않은가. 20여년동안 한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는 노부나가와의 동맹. 자신의 맏며느리로 들어온 노부나가의 딸. 그녀의 일러바침으로 인해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죽여야 할 지경에 이르렀을때 조차 동맹을 끝까지 지키려 했다는 일화. 물론 그런 그를 너무 정치적인 인물로 폄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년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경영이라는 책을 펴낸 도몬 후유지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금, 모든 가치관이 붕괴되는 세기말적 상황에 놓여 있는 일본 사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여론을 중시해야 하는 것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 아닐까"라고. 세월이 지나갈수록 신뢰에 대한 바램이 간절해지는 것 같다. 그만큼 신뢰하고 신뢰받기 힘든 세상이 되어서일까. 눈 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부와 명예를 위해서, 때로는 조직을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으로 신뢰를 저버리는 사례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기고, 이용가치가 떨어진다 싶으면 헌신짝 버리듯 내팽겨치는 그런 작태들. 그것이 혹자에게는 용병술로, 또는 냉혹한 현실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영술로 치부될 수 있다.
흔히 간사하고 음흉한 인물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조조. 그런 그 역시 사람을 중용할때 무엇보다 능력을 중시했으며 일단 기용한 뒤에는 철저하게 신뢰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조조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보다 휘하에 많은 인재들을 거느렸던 것 같다. 그것이 크든 작든, 어느 조직에서건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문화가 정착되길 바래본다. 새해에는 더욱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