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노무현 정부와 은행 인사
재계와 대조적으로 은행권을 중심으로 한 금융계는 노무현 정부의 출범에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일부 금융계 고위 임원들은 대선에서 야당이 이길 것으로 보고 물러날 각오까지 했으나 민주당이 승리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현직 금융계 고위 인사들이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민주당의 재집권으로 해석하고, 새 정부에서도 쉽게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면 다소 성급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금융계의 이같은 분위기는 정치권 기류에 따라 인사가 좌우돼 온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IMF 외환위기 이후에도 은행장을 포함한 임원 인사는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외환위기 이후 시장에서 가장 능력을 인정받는 금융계의 대표적 스타 CEO인 김정태 국민은행장의 경우 그가 과연 대구나 부산 출신이고 경북고나 경남고를 나왔다면 지금의 그 자리에 섰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금융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할 40대 '토종 은행장'의 기수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홍석주 조흥은행장이나 역시 40대로 국제적 경영감각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있는 하영구 한미은행장, 또 하이닉스 반도체 문제의 해결과 외환은행 경영정상화를 이룰 전문 경영인으로 발탁된 이강원 외환은행장 등도 그들의 출신지가 비호남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게 우리 금융계의 현주소다.
은행장 자리만 그런 게 아니다. DJ 정부 5년간 주요 은행들에서는 소매금융이나 인사 등 핵심 보직에는 호남출신 인사가 상당수 중용됐다. 이런 점에서 과거 5공, 6공 정권이나 YS정부와 비교해 DJ 정부는 차별성을 갖지 못한다.
물론 은행장 등 핵심 요직을 차지한 호남출신 인사들이 덜 개혁적이거나 경영을 제대로 못했다는 게 아니다. 또 이들이 권력의 힘을 빌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권력 핵심과 출신 지역이 다르고, 출신 학교가 다르더라도 그것이 어떤 제약조건도 돼선 안된다는 소리다.
노무현 당선자는 2000년 11월 해양수산부 장관 재직시 1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등 경영위기에 몰린 수협중앙회 신용사업부문 대표를 선임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 적이 있다. 당시 노 당선자는 금융계 사정을 잘 아는 주변 참모들에게 추천을 부탁했고 그래서 선임된 사람이 지금의 장병구 수협 신용사업부문 대표다. 장병구 대표는 노무현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과는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이다. 노무현 해수부장관에 의해 지연 학연과 무관하게 발탁된 장병구 대표는 취임후 1년만에 사상최대의 순익을 내는 등 수협 신용사업부문의 경영정상화를 이루는 성과를 일궈냈다.
노무현 당선자는 취임후 거듭 인사개혁을 강조하면서 인사청탁을 하는 사람은 패가망신시키겠다는 말까지 했다. 그러나 금융계가 바라는 것은 말로 하는 인사개혁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의 인사가 수협 신용사업 대표 선임처럼만 됐으면 하는 게 금융계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