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노무현 정부와 재벌

[광화문]노무현 정부와 재벌

유승호 기자
2003.01.30 10:53

[광화문]노무현 정부와 재벌

노무현 정부를 준비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대치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하다. 전경련은 지난 28일 이사회를 열고 새 정부 ‘재벌정책’에 이의를 제기했다.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전경련이 이같은 강경한 입장을 보인 것은 대내외적으로 좋은 장면이 아니었다.

언론에 비쳐진 모습이 인수위 사람들의 실제 생각과 다를 수 있지만 혹시나 인수위가 재벌을 ‘개혁대상’으로 삼고 있다면 재고할 것을 권고한다. 급기야 전경련이 개혁에 반대하는 수구집단으로 채색된다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김석중 전경련 상무의 ‘사회주의’발언은 해프닝에 불과했는데 인수위가 정색하고 대응한 것이 상황을 엉뚱하게 호도시켰다.

김대중 정부가 집권초기 재벌을 ‘개혁대상’으로 몰아세웠던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위기를 넘기기 위해 해외채권자들에게 개혁의지를 보여줘야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IMF가 요구하는 수준보다 더 개혁하겠다는 ‘IMF+α’를 약속했다. 취임초 재벌총수들을 불러모아 개혁을 요구한 ‘퍼포먼스’는 다분히 해외채권자들을 의식한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대우그룹 붕괴로 40조원이상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하이닉스(현대전자+LG반도체)에 17조5000억원, 현대건설에 8조원가량이 들어갔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바이코리아’ 주가를 띄울 당시 현대 유상증자에 참여했던 투자자들은 14조원가량의 손실을 입었다. 삼성차 손실에 대해 2조8000억원만큼 책임지겠다며 이건희 회장이 내놓은 삼성생명 주식 400만주는 주당 70만원으로 계산됐지만 시장가격은 절반이 안된다. 경제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재벌의 비만치료비로 천문학적 비용을 치러야 했고, 이때문에 납세자들이 보는 앞에서 재벌을 죄인시하고 야단쳐야 했다.

이제 ‘개혁-반개혁’구도의 정책이 더이상 필요한 지 생각해 볼 때다. 힘 대결로 밀어붙이면 안되는 일도 없지만 되는 일도 없다. 대표적인 것이 `빅딜'이었다. 기업부문이 스스로 변화하도록 경영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뎌 보이긴해도 지름길이다. 정치권 로비용 비자금을 만들 필요없도록 정치쇄신이 이뤄지면 기업도 변한다. 정치권에 줄대는 무능한 은행장이 선출되도록 해서도 안되지만 유능한 은행장을 괘씸죄로 찍어내서도 안된다. 정치권에 줄댄 은행장들이 부실을 키웠다. 재벌의 봉건적 의사결정구조가 여전하지만 시장에서 계속 시험받고 있다.

집단소송제,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정책 등이 재벌들만을 겨냥한 ‘재벌정책'으로 정의됨으로써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집단소송제는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코스닥기업에 이르기까지 전 기업의 경영자들이 긴장해야할 문제이다. 이를 전경련이 ‘재벌정책’이라며 반대하는 것은 난센스다. 상속.증여세 완전포과주의도 납세의무가 있는 모든 국민에 해당되는 조세정의의 문제다. 수조원의 재산을 물려받고도 쥐꼬리만한 세금을 내는 조세 불합리를 해소하는 것을 `재벌정책'이라 할 수는 없다. 새 정부 경제정책이 이분법적인 ‘개혁-반개혁’ 명분론에 함몰돼서는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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