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엄마는 사십에 게임을 보았다"

[인터뷰]"엄마는 사십에 게임을 보았다"

황숙혜 기자
2003.04.02 12:52

[인터뷰]"엄마는 사십에 게임을 보았다"

"지금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습니다. 당장 세상을 버린다 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충분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이 지나온 삶에 대해 이 정도로 자신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있을까. 창조성과 젊음이 경쟁력의 원천인 온라인게임 업계에서 20, 30대 젊은 CEO들과 당당히 맞서고 있는 김양신(49세. 여) JC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삶 자체가 용기이자 열정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 자아실현

지금까지 김 대표의 반평생은 일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남성들을 앞서기 위한 담금질의 연속이었다.

 

김 대표가 대학 졸업 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나선 것도 여성으로서 확고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분야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램은 남자들 사이에서도 한직으로 취급됐어요. 하지만 대학 때 교수님으로부터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들었고, 남성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서는 그들이 찾지 않는 곳에서 나름대로 제 영역을 다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결혼 후 둘째 아이를 출산하면서 전업 주부로 눌러앉은 김 대표가 40대에 들어서 약7년 동안의 공백을 깨고 사업가로 나선 것도 자아실현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첫째를 출산하고 건강이 나빠져 업무에 차질이 생기자 주위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더군요. 여자는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이었어요. 그러다 둘째를 출산하면서 육아에만 전념하기로 했죠. 하지만 가사와 육아만으로는 어떠한 가치와 성취감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94년 청미디어를 설립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았지만 창업 초기 사업은 고전의 연속이었다. 교육용 통신컨텐츠 사업이 수익창출에 실패하고 창업 후 2~3년간 빚이 순식간에 늘었지만 김 대표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당시 남편이 자신의 퇴직금으로 빚을 청산하고 함께 새로운 사업을 다시 시작하자고 제의했죠. 남편은 빚이 많아 봐야 2억~3억원 정도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당시 부채가 10억원에 육박했죠."

 

#게임과 동화

사업이 궤도에 오른 것은 사업 아이템을 게임으로 전환하면서부터. 통신서비스 업체 가운데 수익을 내는 기업의 대부분은 게임 컨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을 파악하고 사업 내용을 전환한 것이 턴어라운드(기업회생)의 계기가 됐다. 지난해 JC엔터테인먼트는 매출액 67억원, 순이익 19억원을 달성했다.

 

중년의 사업가가 신세대의 정서를 완벽히 이해하고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힘들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란다. 게임에 몰입하고, 동화되는 것이 대학생 못지 않았다.

"어느 날 아바타 게임인 조이시티에 접속하고 카페에 들어가 앉았는데 한 남자가 와서 같은 테이블에 동석하는 거였어요. 순간 그 상황이 마치 현실 속에서 벌어진 것처럼 너무나 떨리고 당혹스러웠어요. 놀란 나머지 게임에서 나와 버렸죠."

 

게임 개발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시장을 너무 앞서간다는데 있다.

"얼마 전 주주총회에서 주주들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았어요. 시장의 흐름에 맞춰 게임을 개발하지 않고 한발 앞선 게임을 만들어 마케팅 비용과 수익 창출까지 시간을 낭비한다는 거죠."

사실 게임을 하며 옷, 액세서리 등 각종 아이템을 판매하는 형태의 수익모델을 갖춘 조이시티도 일반인들이 친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게임 개발 막바지에 이를 때면 언제나 시장의 반응을 얻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요. 하지만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게임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해 성공을 거둘 때의 기쁨은 말할 수가 없어요."

 

# 당근과 채찍

JC엔터테인먼트에는 김 대표만의 `직원 사랑' 방법이 있다. 약1년 전부터 시행중인 `주간 사장제'가 그것. 모든 직원들이 1주일 동안 김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가 되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직원들이 회사 운영과 게임 개발에 대한 이견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의견을 교환한다.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지만 직원들과의 이해를 높이고 서로 교감하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애정이 각별한 만큼 실수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질책이 쏟아진다. 약 3년 전 사업에 합류한 남편 백승일 부사장도 예외가 아니다. 부사장의 실수에 대해 질책하지 못하면 다른 직원들에게도 정당하게 채찍질을 할 수 없다고 김 대표는 말한다.

 

"직원들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노예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JC엔터테인먼트는 내면에서 우러나는 열정으로 일할 자세가 돼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직원들이 일하고자 하는 열정을 쏟아낼 수 있는 기업, 사람들에게 모든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는 청량제가 돼 주는 게임을 만드는 것 등등. 김대표의 기업하는 진정한 목적이 이미 어느 정도 달성된 것 같지만 김대표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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