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이오스페이스 차기철 사장

봄볕이 따뜻하던 어느날 오후. 사장은 결재해달라고 올라온 영업계획서를 검토하고 있었다.
'똑똑'. "예, 열렸는데요." 회계팀장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녀는 손에 든 서류를 내밀었다.
"사장님 법인카드 월별 사용내역서에요." "예..."
"지난 달에 사용한 금액이 평소보다 20%나 늘었어요." "아, 그거. 그 달에 사내 행사가 두개나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런건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이러시면 정해놓은 예산규정이 흐트러지잖아요. 앞으로 사정이 생길 것 같으면 먼저 말씀을 해주세요. 그래야 예산관리가 제대로 되죠." "(땀 한방울이 흐르며..)알았어요."
차기철(45) 바이오스페이스 사장이 들려준 인터뷰 바로 며칠 전 그의 방 풍경이다.
바이오스페이스는 체성분 분석기를 만드는 회사다. 차 사장의 설명. "체성분 분석기란 우리 몸안의 주요 구성성분인 지방 단백질 무기질 수분의 양을 측정하는 장치에요. 건강 관리의 기본인 비만도 측정에는 필수적인 장치죠."
현재 바이오스페이스는 국내 체성분 분석기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당연히 시장점유율 1위다. 바이오스페이스는 석달 밖에 안됐던 첫번째 사업연도를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단 한번도 적자를 내본 일이 없다. 96년 설립, 2000년 코스닥에 등록했고 2001년 66억원 매출에 당기순익 17억원, 지난해 85억원 매출에 25억원의 순익을 올린 알토란같은 기업으로 시장에서 통한다.
#공학박사, 하버드 의대에 가다
차 사장이 체성분 분석기를 처음 접하게 된 건 미국 유학 당시였던 1980년대 중반이었다. 생체공학도였던 그가 체성분 분석기의 구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한 일.
"당시 쓰이던 체성분 분석기에 기술적으로 보완할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더 잘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도교수에게 아이디어를 내고 연구를 시작했죠."
유타대학에서 생체공학 박사학위를 딴 후, 그는 하버드 의과대학에 들어갔다. "관련 분야에서 박사를 딴 사람들을 위한 의학 연구과정(Post Doctor)이었습니다. 기계만 알아서는 제대로 된 체성분 분석기를 만들기 힘들다고 생각했어요." 4년간의 Post Doctor 과정을 마친 그는 96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많은 업체를 돌아다녔어요. 앞으로 소득향상에 따른 헬스케어 산업의 발전과 체성분 분석기의 수요증가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두려웠지만, 제품에 대한 자신감 하나로 회사를 시작했다.
#일본 1위업체의 제품의 다섯배 가격
일본 5대 스포츠센터 체인 중 2개업체가 바이오스페이스의 제품을 쓴다. 1년반의 시운전 테스트를 통과하고 성공한 납품이었다. "일본 내 의료기 분야 1위업체의 대당 평균 단가가 500만원대입니다. 저희 제품은 다섯배 정도의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정밀도, 유려한 디자인을 까다로운 일본 시장이 인정했다.
"의사들이나 전문가들은 저희 제품을 쓸수 밖에 없을 거란 자신이 있었습니다. 의료기기의 정밀도는 전문가들의 신뢰와 직결되거든요." 대단한 자부심이었다. 그럴만 해 보였다. 사실 독자 기술과 자체 상표(브랜드)의 고가제품으로 일본 시장을 개척한 기업이 몇이나 될까. "저희 브랜드 '인바디(Inbody)'는 체성분 분석기의 명품이라고 감히 자부합니다." 그래서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 차라리 기능을 줄여 중저가 제품 살루스(Salus)를 내놨다.
바이오스페이스는 얼마전 가정용 체성분 분석기 기술을 일본에 이전했다. 매출액의 3%를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사실 전문가용 시장보다 가정용 시장의 규모가 더 큽니다. 하지만 마케팅 비용 등 저희 같은 기술벤처가 직접 뛰어들 분야은 아니지요. 그래서 기술을 팔았습니다."
#꾸준하게 계속 성장할 것
차 사장은 자신을 별로 훌륭한 경영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 제 자신을 꽤 괜찮은 엔지니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동안 제가 회사의 경영을 잘 했다기 보다는, 제품 경쟁력으로 먹고 살았던 거죠." 그래서 아쉬움도 있다. 좀 능력있는 경영자라면 회사를 더 잘 키웠을텐데. "반드시 다음 사장은 능력이 돋보이는 내부 직원 중에서 발탁할 겁니다."
그는 엔지니어로 돌아가기 전까지, 최고경영자로서 그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부정한 방법없이 성장해 어디까지 커 나갈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결연한 그의 표정에 '모범생' 이미지다운 얘기라고 농담을 건넸다. "아니에요. 학부때까진 사실 공부를 별로 안했어요. 한 학기에 미팅을 86번이나 한 적도 있는데요.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