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하이브리드의 두 얼굴

[기자수첩] 하이브리드의 두 얼굴

배영백 기자
2003.05.21 13:23

[기자수첩] 하이브리드의 두 얼굴

요즘 신종 자본증권인 하이브리드 채권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만큼 돈 갈곳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그나마 대체 투자수단이 생겨 다행스런 측면도 있다.

그런데 은행들의 하이브리드 채권 발행을 놓고 걱정부터 앞선다. 이 상품은 잡종 또는 혼성을 뜻하는 `하이브리드'의 말뜻처럼 양날의 칼이다. 그래서 양지가 빛나는 만큼 음지는 어둡다.

자본으로 인정되는 하이브리드 채권은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제고에 다급한 은행들에 반가운 탈출구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연 8.5% 안팎의 높은 이자를 준다는데 마다할 리 없을 것이다.

문제는 또 다른 쪽의 칼날이다. 지난 1분기 은행들의 실적은 극도로 악화됐다. 전년 동기 대비 97%가 격감했을 정도다. BIS 비율도 하락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브리드 채권을 남발하면 은행들은 고율의 이자부담에 시달릴게 뻔하다. 궁여지책으로 자본을 확충했다지만 이로 인해 수익성이 더 나빠지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정부의 가계대출 정책에 혼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BIS비율 산정때 적용하는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를 상향조정해 가계대출 급증세에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채권은 이를 무력화시킬 위험이 있다. 은행들이 고금리 하이브리드 채권 발행을 통해 자본을 확충하고 BIS 비율을 높이면 다시 가계대출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은행 관계자들도 주택가치가 폭락하지 않는 한 은행들은 수익성을 보전하기 위해 가계대출을 줄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의 허술한 정책에 허를 찌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융감독당국도 이런 우려를 감안해 조기 경보체제를 가동하겠다고 밝혔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감독당국과 은행들은 하이브리드 채권이 불안하기 짝이 없는 금융시장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결코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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