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비자금과 전경련의 자가당착

[광화문]비자금과 전경련의 자가당착

이백규 부장
2003.10.29 20:33

[광화문]비자금과 전경련의 자가당착

재신임 정국이 정치자금 정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정치자금은 받는 쪽 입장을 미화한 단어이고 주는 기업 입장에선 분식과 탈세로 조성한 비자금이자 대가를 바라고 준 뇌물로 냄새나는 추한 말이다.

이번 뇌물 파동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 SK의 11억 돈벼락을 맞은 데서 비롯됐다. 이 자그마한 뇌물은 대통령 눈 앞을 캄캄하게 했고 정권실세들을 풍지박산시켰고 마침내 거대야당과 재벌도 휘우청거리게 하는 폭발력을 보이고 있다.자고 일어나면 제2, 제3의 SK가 등장하니 95년 노대통령 비자금 사건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등 기업인 35명이 검찰 청사 포토라인에 서야만했던 것처럼 정치인들에 이어 재벌총수들이 검찰에 줄줄이 소환될 전망이다. 권력과 금력의 갖가지 외압에 외로이 버티고 있는 송광수 검찰총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국민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기도 하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오사카에 근무할 때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실린 한중일 뇌물비교라는 칼럼을 본 기억이 난다. 칼럼은 창궐하는 관리들 비리에 천안문 광장 공개 처형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은 중국을 130년전 메이지 유신기에 비유했고 한국은 권력형 부정축재자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의 징벌을 거치면서 많이 깨끗해졌지만 아직도 20여년전 70년대의 수상을 퇴임케한 리쿠르트 스캔들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뇌물에 관한한 수십년이 지나도 앞으로 한보도 전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하는 상황의 한편에 전경련이 있다. 전경련 현직 회장이 뇌물 제공과 탈세혐의로 검찰 수사 리스트에 올라있고 회원사 재벌 회장 상당수는 한두번쯤은 비슷한 경험이 있다.사회전체에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반기업정서도 엄밀히 말하면 반재벌이고 반오너이지 반기업, 반CEO가 아니다.그나마 전경련은 재벌 전체 입장도 대변 못하고 있다. 공장입지, 투자활성화등 경영현안은 제쳐놓고 소수 그룹만의 관심사인 오너 소유지배권 관련 출자총액만 물고늘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삼경련(삼성경제인연합회)이란 말이 나올까.

 

얼마전 만난 전경련 회원사 관계자는 전경련 명칭에서 경제인이라는 낱말을 뺐으면 했다. 뇌물과 정경유착은 일부 재벌 오너의 문제인데 전국경제인연합회라는 명칭 때문에 경제인 모두가 지탄의 대상이 될수 있다는 것이다.전경련 이사인 한 금융CEO는 최근 전경련 회의 참가하는 자체가 부끄러워 아예 불러도 안간다고 고백했다.

 

뇌물 주고 특혜받아 공정한 경쟁없이 더 큰 돈 챙기는 지대(Rent)추구형 경영의 시대는 마감시켜야 한다. 이게 전경련이 말끝마다 외치던 진정한 자본주의이자 글로벌스탠다드다. 뇌물없는, 정치자금 제공없는 새시대가 오면 최대 수혜자는 기업, 특히 덩치 큰 재벌기업이 된다. 이번에 드러난 SK비자금 111억을 그대로 익금 산입했다면 법인과 경영진이 좋아지고 배당재원 증가로 투자자도 즐거워 했을 것이다.

 

전경련이 정치자금 거부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재벌오너 이익 옹호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인이 어디 오너 뿐인가. 기업인 무게중심은 오너에서 CEO로 옮겨가고 있다.포춘지 선정 세계 50대 경영인 반열에 든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정태 국민은행장 같은 시장에서 검증받은 걸출한 CEO와 경영진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경제인 대표 단체로 전경련은 거듭나야 한다.

5.16쿠데타 이래 고비마다 정치자금 공방이 있었다. 전에 그랬듯이 이번도 유야무야 될수도 있을 것이다. 태풍 매미 이상으로 여러 사람을 울릴 비자금 회오리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정신차린 전경련 하나만이라도 건져도 덜 허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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