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전략]"독감(毒感)"
인플루엔자(Influenza, 독감)를 연상케 하는 '몸통 길이 17.3포인트' 짜리 길다른 음봉(종가가 시초가보다 낮은 주가 그래프)이 출현했다. 이번 랠리에서 이만한 몸통길이를 가진 음봉은 세번째로, 앞선 경우는 모두 100일선(758)과 60일선(772)까지 조정을 받았다.
잔 기침에 한기와 두통으로 시름하다 결국 병원행(行)을 택한 걸까. 17일 종합주가지수와 코스닥지수가 각각 800.09(-10.70p, 1.31%), 46.34(-0.36p, 0.76%)로 급락한 것도 따지고 보면 50여일전 800선을 처음 넘은 후 '고열'을 이기지 못하고 긴 조정과 짧은 조정을 반복해 왔던 연장선에 있다.
간신히 지탱한 800선도 큰 위안이 되지 못한다. 독감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는 것은 겨울 추위나 건조한 날씨로 병에 대한 인체의 저항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증시도 다를 것이 없다. 아시아 증시의 급락은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보다, 악재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져 가던 증시 체력의 한계에 보다 큰 이유가 있을 터다.
#바이러스①-차이나 모멘텀 약화
사스가 아니더라도 중국 모멘텀이 약화돼 800선 위에서는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바로 '중국 경제 과열론'이다. '차이나 모멘텀'의 상징적 지표였던 H증시(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 주식)는 약세를 면치 못한다. 후세인 효과로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급등했던 15일에도 4% 가량 급락한 데 이어 하루 전 거래에서는 0.93% 떨어졌다.
임송학 교보증권 이사는 "2003년 아시아 경제의 활력으로 작용했던 중국경제가 투자과열을 우려한 당국의 조치로 내년중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크게 둔화될 것으로 보여 증시에 부담이 될 전망"이라며 "지준율 인상조치로 대출이 크게 둔화되는 가운데 내년부터 실시되는 증치세(부가가치세) 환급률 인하로 수출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정책 당국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고 있다. 강호인 재정경제부 경제분석 과장은 최근 '2004년 국제경제의 주요 변수와 우리 경제의 전망'이라는 주제의 국제경제연구회에서 "1997년 이후 중국 경제가 확장적 부양책으로 경기과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긴축정책으로 급선회하면 경기가 급랭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스티븐로치 모간스탠리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최근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고도 성장을 구가해 온 중국 경제도 2005년부터 투자와 수입 등이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중국 수출비중이 높은 한국, 일본, 대만 등이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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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②-사스 공포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스 공포가 다시 아시아 증시를 엄습했다. 사스는 올해 초 중국경제성장률을 6%로 끌어내린 주범이다.
홍춘욱 한화증권 투자전략 팀장은 "중국 경제가 지난 3분기 9% 성장한 것으로 발표됐으나 체감 성장율은 14~15%에 이를 정도로 과열 양상을 보인 상황에서 브레이크가 필요한 때에 사스 재발 소식이 나온 것"이라며 "이는 증시 조정의 빌미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홍 팀장은 "올초 중국 경제가 사스 여파로 6% 성장에 그친적이 있었고 이는 당시 아시아 증시의 랠리를 구미 국가보다 2~3개월 늦추었다"며 "다만 최근 발생하고 있는 사스는 치사율이 높지 않고 공포를 자아낼 만한 것이 아니어서 심한 독감 이상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단기적 영향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김정표 교보증권 투자전략 팀장은 "카드 사태에 이어 사스 문제는 분명 증시에 영향을 줄 것"이라며 "연초에는 전쟁 등 불확실한 부문이 많아 최악의 상황으로 주가가 더 이상 빠질 수 없는 국면이었지만 지금은 주가가 많이 오른 상황이어서 오히려 부담감은 크다고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러스③-전세계 IT주 부진
사스 및 중국경제 과열론과 함께 투자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나스닥 지수 등 전세계 IT주의 부진이다. 이는 고스란히 삼성전자 주가를 무겁게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2.53% 하락한 44만2500원을 기록했다. 이미 100일선(44만1000원)과 맞닿을 정도로 11월 초 이후 부진함이 계속되고 있다. 재반등 무산이 누적되자 최근에는 손절매 물량까지 나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스닥지수(1924)는 5일선(1927), 50일선(1932), 20일선(1934)을 모두 하회하며 빠른 속도로 랠리에 복귀하기를 바랐던 투자자들의 심장에 말뚝을 박고 있다. 기술주에서 굴뚝주로 주도주가 교체되는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이번 랠리의 상승 모멘텀 한 축이 꺽이고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특히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479)가 '쌍봉'을 찍고 60일선(484)을 하회하며 나스닥 지수의 조정을 부추기고 있다. D램 현물 가격도 연일 하락한 채 4달러 선이 붕괴된 데 이어 3.70달러까지 내려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