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조기상환 옵션포기의 경제적 귀결
몇 년 전 필자는 회사채 수탁계약의 구조와 관련하여 금융업 종사자들에게 간단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필자는 수탁회사나 기관투자가가 일반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부담하는 여러 의무를 열거하고 이런 의무를 등한히 하면 법적으로 매우 곤란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고 엄포(?)를 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투자자의 권리보호는 아직도 허울만 번지르르한 말장난에 그치고 있다.
사건은 요즘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카드사와 관련하여 발생했다. 카드회사가 발행한 ABS(자산담보부증권) 채권에 붙어 있는 소위 “조기상환 옵션”이 그것이다. 풋 옵션이라고도 하고 법적으로는 기한이익의 상실이라고도 하는 이 옵션은 채무자의 의무이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발생하면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기한이익을 상실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번 경우에는 카드사가 보유한 자산의 건전성이 급격하게 하락하고 카드사의 신용도도 이에 따라 악화되면서 조기상환 옵션이 발동될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ABS 채권에 대한 조기상환 옵션은 발동되지 않았다. 금융감독당국이 온갖 수단을 동원해 기관투자가가 이 옵션을 행사하는 것을 저지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 당국이 표면적으로 내건 이유는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가 심화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아직도 과연 이런 일이 합법적으로 가능한 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항변은 “다른 사람들도 다 옵션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즉 이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안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만있다면 나는 재빨리 옵션을 행사해야 한다. 왜냐 하면 그렇게 하면 돈을 다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항변은 “우리나라에서 감독당국을 무시하고 단기적 이익만을 위해 행동하면 결국 장기적으로는 회사에 불이익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항변이 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기관투자자의 펀드에 투자한 사람이 모두 장기로 투자를 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 이런 정책은 회사나 장기투자자에게는 도움이 되는 영업전략일 수는 있어도 단기적 목적으로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에게는 손해가 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옵션행사 포기의 보다 중요한 결과는 법적 차원보다는 경제적 차원에서 발생한다. 원래 ABS 채권이란 구성자산의 “완전한 이전”을 대전제로 한다. 즉 채무자와의 연결고리를 철저하게 단절하여 순수하게 구성자산의 경제적 가치만으로 채권상환을 지탱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금융감독 당국이 “채무자의 유동성 악화”를 이유로 옵션행사를 포기시킴으로써 “연결고리 단절”은 빛 좋은 개살구임을 만천하에 천명(?)하고 말았다. 즉 이번 사건을 통해 ABS 채권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종래의 무보증 카드채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ABS 채권의 추락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당장 모든 카드사의 자금조달이 직접적으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지급보증 없이는 어떤 ABS 채권도 시장에서 소화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ABS 채권 일반에 대한 대중의 신뢰 역시 커다란 손상을 피하기 어렵게 돼 다른 금융기관의 자금조달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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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성탄절이었다. 이때쯤이면 사람들은 설혹 자신이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성탄절이 불의와 부정을 몰아내고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하곤 한다. 그런데 정작 성탄절이 절실히 필요한 곳은 금융계다. 아직도 정도보다는 편법이 제 세상인양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