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환율 방어의 대가

[시평]환율 방어의 대가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2004.01.0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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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환율 방어의 대가

환율이 1달러에 900원하고 한은의 외환보유액이 300억 달러였던 시절이 있었다. 옛날 옛적이 아닌 6년 전의 일이다. 지금은 환율이 1200원 밑에서 오락가락하고 있고, 외환보유액은 1500억 달러에 이른다.

 

지고 있는 외채(원죄) 부담이 상승하는 것이 두려워 후진국이 환율 상승을 두려워한다는 주장을 ‘원죄설’이라고 부른다. 이 원죄 때문인지 물가가 두려워서였던지 환란 전 한국은행은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보유 달러를 매각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석 달 치 수입액을 외환보유액으로 가지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러던 한은이 환율이 1200원에서 조금만 밀려도 겁내고 있다. 그리고 석 달이 아니라 1년 치의 보유액을 쌓고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외국인 주식 투자가 급증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환율 방어를 위해서 달러를 사들이지 않았다면 이 속도로 외환보유액이 증가했을 리 만무하다.

6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우리 물가가 외국에 비해 폭등한 적도 없었고, 교역 규모가 5배로 늘어나지도 않았다. 자본시장 추가 개방으로 국제금융의 변덕에 더 노출된 것도 사실이지만 진짜 변한 건 국제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다. 쓰라린 환란의 경험 덕에 우리는 외환위기 공포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수출이 급증하는 달콤한 고기 맛을 보았다. 이 ‘공포증’과 ‘고기 맛’이 환율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소비가 제자리걸음하고 투자가 곤두박질하는 상황에서 수출 밖에는 기댈 곳 없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 가세하고 있다.

이러한 외환정책의 대가는 통안채의 5%와 미국 재무성 채권 2% 사이의 역마진으로 계산하면 안 된다. 이는 한은 입장에서의 비용이고 외국인 증권 투자의 실현 이익이 30%라면 우리 경제가 치르는 비용은 이 30%와 2%의 차이가 된다. 그리고 이 비용은 외국인의 투기 수익을 줄임으로써, 외환의 운용 수익을 늘림으로써 줄일 수 있다.

올해 원화가 달러에 비해 10% 이상 절상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최근 외국인 주식 투자 급증의 배경에는 이 기대심리가 강력히 깔려 있다. 주가 상승에 환차익을 얹어서 수익률을 계산하는 외국인과 주가 상승에만 염두에 두는 국내 투자자들 간 행동의 비대칭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외국인이 환차익을 예상하여 주가가 오르고, 그 결과로 환율이 충분히 하락하게 되면 그들은 높은 수익을 챙겨서 나갈 것이다. 환율 하락으로 한국 주식이 너무 비싸졌다느니, 수출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었다느니 하면서.

이 과정에서 우리가 부담하는 비용을 줄이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절상을 용인할 것이라면 신속하게 하고, 그 타이밍이 읽혀서는 안 된다. 기업의 불만과 경기가 염려되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총선이 끝나고 경기가 회복 될 때쯤에 절상을 용인하는 코스를 취하면 우리 시장은 외국인의 밥이 된다. 둘째는 환율의 움직임과 이에 연계된 외국인의 움직임을 읽고 외국인보다먼저 사고 먼저 파는 역할을 국내 기관 투자가들이 어느 정도는 해줘야 한다.

투기에 무재주인 경제학자가 큰 소리로 외칠 일은 아닌 듯싶다. 그러나 중책을 담당할 ‘선수’들이 너무나 안보여서 갑갑하기에 하는 말이다. 한국투자공사의 설립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를 관치와 땜질의 상징인 재정경제부가 맡는 다는 것은 찜찜한 일이다. 카드채의 공포 속에서 무사히 좋은 데로 팔려 나갈 것을 꿈꾸고 있는 투신사와 보험사가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맡을 수 있을까? 동북아 금융 허브는 김포 매립지에서 꿈꿀 일이 아니다. 카드채의 해결과 기관 투자가의 정상화에서 시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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