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씨티은행, `윔블던현상' vs `메기효과'
장면 하나.
1988년경 정부의 통화관리 때문에 자금사정이 어려워진 국내굴지의 한 그룹 계열사에 씨티은행은 귀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통화옵션을 발행하면 씨티은행이 이를 사들이면서 돈을 지불하겠다는 것이었다.
흥미 있는 것은 그 구조였다. 통화옵션의 액면가보다 프리미엄이 열배 정도 높아지게 해서 겉으로 나타나는 액면금액은 작은데 실제로는 엄청난 금액이 오가도록 잘 포장이 되었다. 이 기업은 통화옵션을 발행하고 화끈한(?) 옵션프리미엄을 챙겼고 이 돈은 가뭄의 단비처럼 유용하게 쓰였다.
시간이 흘러 옵션의 만기가 도래했을 때 씨티은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옵션을 행사하여 프리미엄보다 큰돈을 기업으로부터 돌려받았다. 겉으로는 통화옵션거래였지만 사실은 정부규제를 피해 옵션거래로 위장한 대출이었다.
장면 둘.
1994년 경 씨티은행 한국지점은 갑작스런 은행감독원의 검사를 받게 되었다. 언론에 보도된 금리스왑 때문이었다. 얘기는 대략 이랬다. 한 거액 VIP고객이 해외에 있는 수취인에게 거액의 달러 송금을 요구했다.
씨티은행은 불법적인 이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고 우선 달러표시 금리스왑계약 세 개를 동원하였다. 씨티서울, 송금수취인, 그리고 씨티홍콩까지 끌어들여 성사된 세 개의 스왑계약은 원금이 대략 6500만 달러였고 삼각형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세 개의 스왑을 한바퀴 돌리면 2년동안 송금수취인에게 일정액수가 송금이 된다. 제 3자인 씨티홍콩은 송금액수를 고정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되 손익은 제로가 되도록 절묘하게 짜여졌다.
은감원 조사는 이 스왑들의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한 채 마무리 되었다. 소위 변칙스왑사건으로 불리운 이 스왑에서 매우 특징적인 것은 씨티은행이 스왑손실로 포장하여 송금수취인에게 보낸 자금이 씨티은행의 고유계정자금이었다는 점이다.
고객이 부탁하니까 자기 돈으로 송금을 한 셈이다. 고객은 자신이 보유한 고금리 신탁예금을 2년동안 초저금리의 보통예금으로 전환시켰다. 결국 송금액과 수수료를 이자지급비용감소를 통한 간접이익에 의해 보전시킨 것이다.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소위 거액고객에 대한 씨티은행의 서비스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 대강을 짐작하게 된다. 우리가 걷기는커녕 기어다니고 있을 때 그들은 날아다니고 있었다. 국내은행 지점은 지로용지를 들이밀면 친절하게 이를 처리해주는 동사무소 정도로 여겨지던 그 시절, 그들은 통화옵션을 이용하여 법인고객에게 정부규제를 회피한 대출을 해주고, 금리스왑을 동원하여 거액고객을 위한 거액달러송금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불법과 합법의 중간지대인 편법의 지대까지 넘나들면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국내시장에 그야말로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어색한 분위기”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그 씨티은행이 이제 37년의 탐색기를 끝내고 한미은행을 인수하여 국내 순위 5위의 은행으로 도약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언론은 프라이빗 뱅킹과 자산관리에 능하다고 씨티를 평한다. 능하다는 말이 모자랄지도 모른다. 그 씨티은행의 지점 갯수가 이제 12개가 아니라 237개가 된다.
남들에게 마당만을 제공한 채 스스로의 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인 경우를 빗대어 “윔블던 현상”이라고 한다. 외국선수가 우승을 차지한다고 해서 붙여진 조어이다. 반면 메기 한 마리를 미꾸라지 어항에 집어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생기를 잃지 않는데 이를 `메기효과'라 한다.
독자들의 PICK!
여태까지는 `윔블던 현상'만을 보여준 씨티은행이, 이제 한미은행 인수를 계기로 `메기효과'를 우리 금융시장에 가져오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