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부채비율 99%의 뒷모습
증권거래소가 1일 발표한 제조업 상장사의 지난해 실적은 눈부시다. 순이익과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부채비율은 1978년 한국은행이 조사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100% 밑으로 떨어졌다.
부채비율이 100% 미만이라는 것은 기업의 부채가 자기자본액보다 적어져 재무 안정성이 크게 높아졌음을 나타낸다. 안정성만 개선된 것이 아니다. 영업이익이 8.32% 늘어나 성장성도 유지했고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전년비 0.78%포인트 증가해 수익성도 개선됐다.
문제는 이 같은 '모범생' 실적이 뒤집어 보면 기업들이 기록적인 순익으로 부채 줄이기에만 급급했을 뿐 설비투자는 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설비투자는 전년비 4.6%가 감소했다. 설비투자 감소세는 올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올해 1, 2월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비 0.5% 줄었다.
국내 기업들은 IMF 위기를 계기로 과감한 투자를 통한 외형 확대 전략을 버리고 수익성 중심주의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국내 제조업 상장사의 부채비율은 1998년 253%에서 2003년에는 99%대로 낮아졌다.
이는 경기 사이클이 악화돼도 금융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졌다는 긍정적 신호지만 그만큼 미래에 부를 창출할 가능성이 있는 과감한 투자도 없었음을 뜻한다. 국내 제조업 상장사의 부채비율은 우리보다 선진국이라는 미국이나 일본보다도 낮다. 미국과 일본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2002년말 기준으로 167%와 156%. 당시 한국 제조업의 부채비율은 109%였다.
아직도 선진국 대열에 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성장이 필요한 국내 기업이 혹시 너무 일찍 미래의 성장성을 희생하고 보수적으로 재무 안정성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제조업의 지난해 경영실적을 보고 있으니 "IMF 위기가 한국에서 빼앗아간 가장 큰 재산은 도전정신"이라는 한 투신사 사장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