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누가 누구를 가르치는가
환란 이후 우리는 선진국들의 질타에 완전히 기가 죽었다.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며 죽기살기식으로 성장률만 올리는 방법 때문에 나라가 망했으며 기업의 중복 과잉 투자가 나라를 망쳤다는 비난을 들었다.
그래서 환란 이후 대대적 구조조정을 하면서 이른바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선진국의 제도를 도입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 숨을 돌리고 보니 선진국들의 그런 비판이나 훈수가 꼭 우리를 도와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들도 실수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컨대 공기업 민영화의 경우 우리는 영국이 가장 성공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하철 민영화를 비롯해서 영국의 공기업 민영화는 실패한 사례도 많다. 또 금융개혁의 경우도 영국이 가장 앞선 것으로 알고 있었다. 환란 이후 금융구조조정을 하면서 우리는 감독기구를 개편하거나 부실기업을 정리하면서 영국식 방법을 따랐다.
당시 정부는 그것을 `런던 어프로치`(London Approach)라면서 어리벙벙한 국민들에게 한 수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멋진 개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금감위와 금감원의 조직간 갈등 때문에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 include "http://www.moneytoday.co.kr/notice/click_money.html"; ?>노사관계는 또 어떤가. 국민의 정부 시절 노사정위원장을 지낸 분은 네덜란드의 `바세르나 협약`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우리도 그렇게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네덜란드 모델의 요즘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신나게 임금을 올리더니 결국 극심한 인플레로 국가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걸 몰랐는지 정책실장을 지낸 분은 얼마전까지도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네델란드 방식이 적합하다`고 주장했었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유력인사들은 장관급만 되면 아주 자신있게 국민들을 가르치려 든다. 우리 특유의 문화나 관행은 고려하지 않고 외국의 무슨 모델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아주 위험하다.
고려대학의 이종화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975년부터 1998년까지 전세계 133개국에서 일어난 총 금융위기는 277건이었다. 이중 외환위기는 139건, 은행위기는 149건이었다. 두 위기가 중복된 경우도 많았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었다고 해서 경제 열등국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빨리 위기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경제 우등생에 속한다.
그런데도 우리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정부내에도 아직 많다. 예를 들어 행정수도 이전의 경우를 보자. 찬성논지중 하나는 수도권의 밀집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밀집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경쟁력인지도 모른다.
부존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인구의 40%가 수도권에 모여 살다보니 자원도 집중하고 정보의 유통도 빠르고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생기는 것이다. 밀집이 문제라면 홍콩이나 싱가폴은 어떻게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선진국의 사례나 충고는 참고해야 하지만 맹종해서는 안된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매킨지사는 작년에 아시아의 금융산업에 관한 보고서를 내면서 은행들에게 몇가지 조언을 했다. 첫째, 기업금융을 해야 돈번다는 생각을 버리고 소매금융에 치중하라.
독자들의 PICK!
그런데 우리의 경우 은행들이 신용카드등 소매금융에 치중하다 큰 손해를 보았다. 둘째, 은행이 만물상처럼 여러가지 업무를 하지 말고 잘하는 업무에 특화하라. 그러나 우리 은행들은 자회사를 통해 증권, 투신, 보험등에 열심히 진출하고 있다. 우리 은행고객들은 덩치가 작은 은행을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아직 국민들을 가르치려는 공직자와 외국기관들이 많다. 돈도 안들고 나중에 책임도 안지기 때문인가. 정책 실명제는 흐지부지 되었지만 `훈수 실명제`는 꼭 정착시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