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하나는 알고 둘은 몰라
대원군이 '상가 집 개'라는 수모를 참으면서 와신상담한 결과 세도정치의 악습을 끊었지만 우리 역사상 일대오점을 남겼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10년 동안 쇄국정책 대신 개방을 추구하였다면 36년간의 일제 식민지도 없었고 지금까지 남북분단이라는 멍에를 우리 민족이 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 당시 대원군은 서양 오랑캐를 멀리 하는 것이 조선의 부국강병에 도움이 되는 줄 알았지 이것이 화근이 되는 줄 미처 몰랐다. 이런 상황을 잘 묘사하는 우리의 속담이 바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는 것이다.
작금 이와 같은 속담을 상기하게 하는 정책이 눈에 띄고 있다. 재경부는 내년 소득세법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파생상품거래에 대해 양도차익의 10%를 과세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삽입했다고 한다. 파생상품의 거래는 철저하게 제로섬 게임이다. 이익을 본 투자자가 있으면 그와 똑같은 금액을 손해본 거래 상대방이 존재한다. 이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다면 손실에 대해서는 세금을 환급해 주는 것이 세제의 기본 덕목인 형평성에 합치한다.
이익에 대해서는 또박또박 세금을 부과하고 손실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면 이는 국가의 세정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담당하는 재경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다. 파생상품에 대한 과세는 파생상품의 과열을 진정시키겠다는 정책목표 달성에 급급한 나머지 조세의 기본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또 손실에 대해 세금을 환급해 준다면 양도차익에 대한 세수는 징세비용 등을 감안한다면 국가입장에서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영창악기의 부도로 이어진 공정위의 결정을 접할 때 우리는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삼익악기가 영창악기를 흡수합병하면 나타날 독점의 폐해 때문에 공정위는 삼익악기의 영창악기 흡수합병을 불허했다고 한다.
삼익악기와 영창악기라는 두 개의 기업이 존재하나 삼익악기가 영창악기를 흡수합병하여 단일의 기업이 존재하나 양자 모두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완전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독점의 폐해라는 근시안적인 판단이 우리나라 악기 시장의 경쟁력만 떨어뜨리고 있다. 우리나라라는 좁은 시장에서 점유율 몇 %라는 잣대보다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규모의 경제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어야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된다.
금융계열사에 대한 의결권제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코리안 디스카운트'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은 지금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지금까지도 실체가 모호한 소버린에 의한 SK(주)의 적대적 인수합병은 아직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다. 자기 자신의 지배구조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이 없는 소버린이 SK(주)를 장악하면 기업의 지배구조가 개선된다는 그 어떤 보장도 없다.
소버린이 동원하는 자금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제약도 가하지 않고 또 가할 수 없는 입장에서 만만한 국내기업의 금융계열사에 대해서 의결권을 제약하는 것은 두 손을 묶고 권투시합을 하라는 것과 진배가 없다. 몇몇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과거 재벌이 잘못했으니까 그 대가로 의결권제한이라는 강수를 감수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작금 일어나는 상황은 기업 경쟁력제고를 위한 기업 경영의 투명성이 아니라 기업 경영의 투명성 제고가 기업경영의 최고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느낌이다. 주객이 전도된 정책의 표본이 아닐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 방문길에 “기업이 바로 나라다 하는 생각이 든다”라고 언급했다.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삼성로고가 생겨진 카트를 보거나 이스탄불에서 LG 로고가 새겨진 깃발이 거리에 휘날리는 것을 볼 때 우리는 한국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경영권마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간 기업은 결코 우리의 기업이 아니다. 아무리 국제화도 좋지만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 없는 국가가 제대로 된 국가로 대접 받을 수 없다.
1만달러 소득을 넘어 2만달러 내지 3만달러 소득을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이 붕괴한 후 통일국가로 발돋움하느냐 아니면 1만달러 소득에서 미끄러져 5000달러 시대로 돌아가고 북한을 중국이 차지하는 등 중국의 변방국가가 되느냐의 갈림길에 우리는 위치하고 있다. 냉엄한 국제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명분에 집착하면서 허송세월한다면 우리는 구한말의 역사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