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헷갈리는 발언들
정부 정책이 효과를 내자면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하고 무엇보다 일관성이 중요하다. 시간적으로 일관될 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간에도 조율이 잘되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정부 내 유력 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너무나 중구난방이어서 정부가 과연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너무 많다.
최근의 통계를 보면 수출증가율, 설비투자, 소비 등이 줄줄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를 왜곡해석 하지 않는 한 한국경제가 장기불황으로 가는게 아닌가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국무총리는 "올해 이익이 1조원이 넘는 기업이 10개가 넘는다. 우리경제는 호황도 이런 호황이 없다. 기업들이 엄살을 떨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은 그 10개만 잘되고 있는 것을 모르는 듯 하다. 사상 최대의 호황이라면 투자나 소비, 고용지표는 왜 이 모양인가.
경제부총리의 발언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5%성장은 문제없다던 그가 이제는 "한국형 뉴딜"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국의 전문 기관들은 연금을 사용해 찔끔 찔금 지출하기 보다 재정확대가 더 효과적이라고 말하지만 재정투자를 하자면 국회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사실은 경기가 엄청 불황"이라고 고백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한편 정책기획위원장은 더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어 주목된다. 전체적으로 불황은 아니고 다만 양극화가 문제라는 것이다. 대기업은 잘되는데 택시나 식당 등 서비스업종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지방이건 서울이건 택시 기사들은 지금 거의 폭발 직전이다. 월 50만∼80만원정도 밖에 손에 쥐지 못한다는 것이다. 식당도 마찬가지여서 얼마 전 수백명의 식당주인들이 장사가 안된다며 솥을 들고 와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구조조정의 여파로 택시를 몰고 식당을 차린 사람이 늘어 과잉공급이 문제라고 판단,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연구 중이라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식당주인이나 택시 기사들이 들으면 분통을 터뜨릴 것이다.
시장에 나와서 업자들의 하소연을 들어보아야지 책상 앞에 앉아서 "심층적으로 연구"해본다고 정답이 나오는가. 서민층이 왜 택시업을 하고 식당을 차리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몰라서 연구를 더해 보아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연구를 해보겠다는 분은 문제점을 인식은 하고 있다. 언론 탓을 하는 당국자도 있다. 최근 청와대의 정책실장은 한 강연에서 "일부 언론이 소설을 쓰면서 참여정부를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지난 30여년간 의료, 교육, 레저 등 소비 인프라가 약화돼 소비를 살릴 수 없기 때문인데 이걸 참여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부진에 대한 그의 분석은 일리가 있으나 "내 생각과 다르면 소설을 쓰는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될 것 같다. 경제가 잘되면 내가 잘했기 때문이요 안되면 과거부터 누적된 문제점 때문이다? 소설가가 많아야 제대로 된 처방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우리경제는 환율하락 때문에도 불안하다. 정부도 국민이나 기업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적극 개입할 뜻을 밝혔다. 올바른 정책대응이라고 본다. 그런데 재경부의 외환당국자는 일부 국내 대기업의 환투기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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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당국이 미세조정(smoothing operation)을 해도 일부 기업들이 외환시장에서 베팅(도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조절이 제대로 안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기업의 전략이나 경영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세상에 어느 기업이 환율변동을 넋빠지게 바라보고 있단 말인가.
그가 말하는 베팅을 기업에서는 헤지(hedge)라고 부른다. 국제거래를 하는 기업들은 외환변동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물이니 스왑이니 하는 기법을 이용해 안정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도 외환시장의 이해관계자다. 그래서 어떤 나라도 "정부가 알아서 미세조정을 해줄 터이니 기업들은 잠자코 있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위로는 총리부터 아래로는 외환당국자까지 공통점은 남의 탓을 한다는 점이다. 경제에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