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자본에는 국적이 없다?

[시평]자본에는 국적이 없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
2004.12.16 17:18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시평]자본에는 국적이 없다?

소버린 펀드에 이어 헤르메스 펀드가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떡 주무르듯 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대해 주주자본주의의 논리상 당연하다는 목소리도 이에 못지않게 우세하다. “자본에 국적이 없다”는 말은 강대국자본들이 지어낸 신화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외국기업에 대해 께름칙하게 느끼는 자체가 우리나라의 고질적 병폐인 한국의 외국인 혐오증이라는 시각도 있다.

18세기 초에 영국의 경제학자 리카르도는 비교생산비설을 주장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무역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 금기시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 현대경제학의 기초를 다진 사무엘슨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미국이지만 블루칼라 뿐 만 아니라 화이트칼라와 관련된 고용도 중국과 인도에 빼앗기고 있는 현실에 당면하자 자유무역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비교생산비설이 현실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미국과 같은 강대국도 언제든지 이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미국의 이중 잣대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이는 미국도 경제민족주의를 철저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설픈 세계화가 IMF라는 고통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미꾸라지 노는 곳에 메기 몇 마리를 넣어 주어야지 한꺼번에 많은 메기가 들어오면 미꾸라지는 강해지기 전에 잡아먹히는 수 밖에 없다. 개혁과 개방화라는 미명 속에 우리나라 기업은 멍들고 있다. 이에 반기업 정서로 인해 기업을 옹호하면 수구로 몰리는 것이 현실이다. 단기이윤을 추구하는 외국자본에 의해 토착기업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소위 분할매각이 이루어져 한국경제의 성장기반이 없어진 다음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외국자본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외국자본에 대해 국내자본이 당하는 역차별은 없어야 한다. 감사선임에 관한 상법 규정에 의하면 발행주식총수의 3%를 초과하는 주식을 가진 대주주는 그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와 같이 대주주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수많은 규정들이 각종 법령에 있으나 이를 외국 자본이 피해가는 것은 식은 죽을 먹는 것보다 용이하다. 우리나라 감독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설립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얼마든지 국내주식을 매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버린이 보유지분 14.99%를 크레스트 씨큐러티스 외에 5개의 페이퍼 컴퍼니에 분산소유하고 있는 것도 위와 같은 맥락이다. 대주주를 규제하는 각종 장치는 금융 실명제를 준수하여야 하는 토종자본에게만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자본을 선한 자본과 악한 자본으로 구별할 수 없고 외국자본 중에는 일부 투기성 자본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자본의 긍정적 측면도 굉장히 많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의 속성은 한가지이다. 이는 다름 아닌 이윤추구이다. 이윤 추구의 기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선한 자본이기 때문에 이를 회피한다는 것은 우리만의 생각이다. 자본이 우리나라 법령의 허점을 이용해 단기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사전에 철저히 막는 제도가 필요하다. 주요 선진국들이 겉으로는 자본자유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각종 규제를 통해 자국자본에 대한 직간접적인 보호 장치를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미미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할 때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토종자본이 규제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지금 외국자본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다. 외국자본이 들어오면 선진경영기법이 전수되고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어 소위 코리안 디스카운트가 없어진다는 믿음이다. 이는 외국자본을 무조건 배척하는 것 보다 더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외국자본이 반도체 이후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첨단산업을 제시하고 개발해 줄 수는 없다. 외국자본은 고수익을 쫓아 각국을 전전하는 자본일 뿐인 것이다.

요즘 삼성의 SK주식 매입에 대한 국내외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도 비판적인 논조를 보이고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등장하는 백기사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제도가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속할 만큼 보편화된 제도이다. 이를 외국인들이 비판하는 것은 선진국이 취하는 소위 사다리 걷어차기의 정형이다. 외국 언론 또는 외국인의 비판에 일비일희하지 않고 의연하게 우리의 길을 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외국자본에 대해 취할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