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내각제로 가고 있는 한국
노무현 대통령은 지방의 균형발전과 국정의 권력분산을 주요한 지표로 삼고 있다고 말해왔다. 노대통령은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실제 행동도 그렇게 해왔다. 지방의 균형발전을 위해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었고 권력의 분산을 위해 책임총리제를 강조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내각은 총리가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는 가운데 분야별로 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부총리를 3명이나 두어 (경제, 교육, 과학기술)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기준 교육부총리의 퇴진 및 후임자의 선정과 관련, 노대통령은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장관은 여러 이해관계를 조절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정치인 출신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장관은 전문가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으나 전문가는 장관이 골라서 참모로 쓰면 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노대통령이 앞으로 장관들을 바꾸면서 정치인 출신의 비중을 높인다면 책임총리제와 함께 우리의 국정운영 형태는 유럽형 내각책임제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헌법은 우리의 권력구도를 대통령제로 설정하고 있는데 노대통령은 국정운영을 내각책임제 비슷한 형태로 끌고 가자는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이 국정을 어떻게 운영하든 누구도 비판할 수는 없다. 특히 그 결과가 좋다면 참신한 발상이라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헌법정신과 실제의 운영형태가 다를 때 아무래도 문제가 생길 소지가 많다고 보아야 한다.
우선 총리의 권한과 역할을 보자. 이해찬 총리가 장관제청권 등 측면에서 과거 총리들 보다 우대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총리는 여전히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하는 수준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찬 총리와 같은 이름(직함)을 가지고 있는 토니 블레어, 게르하르트 슈뢰더, 고이즈미등 3명의 총리를 보자. 토니 블레어는 영국을 EU(유럽연합) 국가에서 가장 성장율이 높은 나라로 만들었다. 그는 노동당 출신이지만 보수당 출신 대처 전 총리의 좋은 정책을 그대로 승계했다. 슈뢰더 총리도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젠다 2010"을 밀어붙여 복지개혁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도 경기회복은 물론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내각책임제의 총리는 자신의 어젠다(Agenda)를 가지고 승부를 걸 수 있다. 최종 책임자는 국민에게 호소하면서 승부수를 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총리는 어떤가. 대통령이 어떤 권한을 위임하고 아무리 신뢰한다 해도 그는 그만의 어젠다를 결코 가질 수 없다. 예컨대 이해찬 총리가 "교육 개혁에 이 정권의 운명을 걸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면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 강성노조를 무력화 할 "노동 2005 플랜" 같은 걸 나 자신의 철학이라며 발표할 수 있는가. 절대로 불가능 하다, 그렇다면 책임총리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권한이 있을 때 책임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관의 경우는 어떤가. 전직 장관들을 만나서 장관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기존의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법을 만드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한번 만들어지면 글자 한자 고치는데도 이해관계자들이 거품을 물기 일수라고 한다. 장관이 소신대로 일하자면 새로운 법도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이해관계자들의 로비나 압력이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관직을 수행하기에는 정치인 출신이 유리하다는 노대통령의 발언은 매우 일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독자들의 PICK!
그러나 과연 장관이 모나지 않는 성품을 가지고 모두를 만족시킬 해법을 찾을 일만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교육부총리를 고르면서 개혁을 해낼 인물을 찾는 것일까. 개혁이란 기득권을 물리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이란 체질적으로 두리뭉실 만족시킬 해법을 찾는 사람들이다. 본질적으로 개혁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두리 뭉실 하는 경우 말썽은 일으키지 않을 것이고 대통령 입장에서는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물론 블레어 총리나 슈뢰더 총리도 정치인 출신이면서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국정의 최종 책임자이다. 최종 책임자는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의 심판대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언제 물러날 지 모르는 장관과는 철학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이 생각할 때 장관들이 정치력을 발휘해 원만하게 국정을 이끌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스스로의 어젠다를 가지고 국정을 이끌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장관을 Secretary라고 부른다. 대통령의 비서라는 뜻이다. 장관은 아무리 유능해도 대통령의 뜻을 받드는 보좌관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것은 대통령의 통치 철학에서 나올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대통령이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하는 것은 방법론에 그쳐야지 국정운영의 실질적 내용까지 바꾸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세제를 바꾸는 경우 대통령의 승인 없이 가능할 것인가. 교육부총리가 입시제도를 바꾸자면 대통령의 승인 없이 가능할 것인가. 모두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철학과 상충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대통령 중심제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이 한발 물러서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다. 그렇다면 정치인 출신이 나은지 전문가 출신이 나은지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