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북한강이 유일한 사치인 포니정 선영
지난 25일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이 영면한 경기도 양수리 선영은 한국 자동차산업 대부의 묘자리로는 너무 검소했다. 평소 정 명예회장의 소탈한 성품이 그대로 반영됐다는 게 이날 선영을 찾은 지인들의 한결같은 해석이다.
승용차 한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은 폭의 시멘트 포장길을 500여미터쯤 올라간 야산 중턱의 선영은 멀리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게 유일한 사치였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들조차 "이미 20여년전부터 선영을 결정했다고 알려져 어느정도 묘자리가 준비됐을 것으로 알았는데 막상 선영을 와보니 방치된 수준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할 정도였다.
32년간 자동차 외길 인생을 걸어온 포니정은 마치 유가족과 지인들에게 "한줌 흙으로 돌아갈 한뼘 땅만 있으면 됐지 더이상 뭐가 필요하냐"고 되묻는 듯 했다.
잔디조차 심어져 있지 않은 20평 남짓한 묘자리는 보통사람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었다. 그 흔한 상석이나 묘비조차 없이 하관은 유족들과 지인들의 오열속에서 청교도적으로 치러졌다.
고인의 손때가 담긴 유품에서도 근검절약이 몸에 베인 고인의 습관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고인이 생전에 가지고 다니던 장지갑과 서류가방은 어림잡아 20년이 넘었다고 한다. 서류가방은 자크가 세번이나 고장났지만 그때마다 고인은 이를 남대문시장에서 고쳐오게 해 계속 사용해 왔다.
집무실 한켠의 낡은 일제 테이프 레코더도 고인의 청교도적 삶을 잘 보여준다. 제작연도가 60년대인 이 레코더는 빨리감기 버튼 등은 아예 없고 플레이 버튼과 정지 버튼이 고작인 40년이 넘은 골동품이다.
고인은 평소 점심식사도 설렁탕이나 칼국수 한 그릇이면 대만족이었다고 한다. 포니정은 그렇게 철저한 자기관리와 청교도적 삶을 통해 그의 자서전 제목처럼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만들어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