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S&P의 한입 두말

[기자수첩]S&P의 한입 두말

이경호 기자
2005.09.30 08:06

세계적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지난 28일 한국 중국 대만 등 아시아권 은행 18곳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올렸다.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 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좋아졌고, 또 앞으로도 개선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유는 타당해 보인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에만 우리나라 국가 예산의 4분의 1 정도인 450억 달러(한화 45조원)를 은행에 공적자금으로 투입했다. 지난 98년 이후 은행에 쏟아 부은 돈만 1000억 달러가 넘는다.

털어낸 부실여신까지 합하면 정부의 직ㆍ 간접적 지원은 수천억 달러에 이른다. 중국의 경제통계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지만 은행의 재무구조가 개선됐다는 주장을 의심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래도 S&P는 성이 차지 않은 모양이다. 아시아 정부의 더 많은 지원을 요구했다. 은행을 성장 도구로 이용해 부실을 키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즉, 단기 고도성장을 위해 은행을 자금줄로 남용해 생긴 부실인 만큼 정부의 돈으로 틀어 막으라는 얘기다.

일면 너무도 당연한 얘기인 듯하지만 지난 아시아 외환위기(IMF) 때를 떠올리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몰락 위기에 처한 은행을 살리기 위해서는 시장을 개방하고 정부의 간섭(지원)을 줄여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는 '시대의 논리'와 상충되기 때문이다. S&P도 은행에 대한 지원으로 정부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이에 반대했다.

S&P가 이렇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외환위기 때는 아시아의 자본시장을 통째로 삼키기 위해 정부의 힘이 커지는 것을 반대했지만 이제 중국을 제외한 대부분 아시아 국가의 자본시장이 열렸기 때문에 정부가 은행의 부실을 청소해 주면 은행을 통째로 먹겠다는 외국투자자의 심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유력 외신들은 한국이 IMF 당시 어려울 때는 외국투자를 환영했다가 먹고 살만해지니까 외국자본을 홀대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외국계의 이같은 태도 또한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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