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내년 1월말로 20여년 가까이 재임한 연준을 떠나게 되었다. 워터게이트 스캔달을 파헤쳐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불러 온 워싱톤 포스트지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그린스펀을 클린턴 정부의 경제정책을 뒤에서 보이지 않게 기획하는 사람(ghostwriter)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막대한 재정적자시대를 마감하고 영원히 경기침체는 없을 것 같은 이른바 신 경제시대를 열어 준 세기의 중앙은행 총재가 바로 그린스펀이다.
월 스트리트 사정에 밝고 연륜이 풍부한 벤슨이 재무장관으로 임명받으면서 대통령 당선자 클린턴에게 임기 중 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려면 그린스펀과 좋은 신뢰관계를 가져야한다고 제언한 일화도 있다.
클린턴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첫 연두교서를 발표할 때 그린스펀을 힐러리 바로 옆 자리에 앉히는 파격적인 예우를 하기도 하였다. 그 만큼 그린스펀의 권위를 인정하였고 이는 미국 경제를 장기호황으로 이끄는 시발점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린스펀은 어떻게 그렇게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
무엇보다도 겨우 28세의 나이에 금융 경제에 관한 컨설팅회사를 직접 설립하고 그 후 20여 년 동안 쌓아온 풍부한 현장 습득 실무지식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위의 높고 낮음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고 격의없이 토론하기를 즐겨하는 겸손함도 갖추고 있었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과도하게 높게 평가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통계청 하급직원과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고 각종 경제지표를 점검하는데서 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하여 현실 경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을 꼼꼼히 체크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는 시장의 현장감을 실시간으로 알아내고 가슴으로 느끼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일에 최선을 다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유랑 악단원이 되기를 꿈꿔 한 때 음악을 전공하기도 했던 그의 예술적 재능이 그를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만드는데도 어떤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1987년 소위 블랙먼데이때 연준이 단호하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런 경력이 상당히 작용하였을 것이다.
금융시장이란 너무나 예민해서 정책의 강도가 너무 강하면 터지고 너무 조심스러우면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예술적 품성이 연준으로 하여금 금융정책 수단을 유연하고 빠르게 활용할 수 있게 하였고 마침내는 자칫하면 1930년대와 같은 엄청난 불황에 빠질 위험에서 전 세계를 구해냈다고 생각해 보는 것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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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린스펀이 나오지 않을까”하고 의문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상적 중앙은행 총재란?
해박한 금융 경제이론은 물론 금융시장에서 얻은 전문적 현장 실무지식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어서 정책의 활용에 있어서도 섬세하고 정교한 솜씨로 적시에 적절한 강도로 각종 수단을 활용할 줄 아는 현장 인식 능력과 감각 그리고 유연한 테크닉을 갖춘 사람이 아닐까 ? 또한 토론을 즐기고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끈질긴 설득력과 겸손함까지 갖춘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