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나 홍콩 중심부의 일요일 공원은 일반 관광객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또 하나의 장관을 제공한다. 수천 명의 필리핀 가정부들이 마치 철새 떼처럼 모여 있기 때문이다. 달리 갈 곳도, 돈도 없기 때문에 각자 도시락을 싸들고 공원에 모여든 이들은 서로 안위를 묻고 애환을 들으며 휴일의 한나절을 보낸다.
한 자료에 따르면, 홍콩에만 22만명의 외국인 가정부나 하인들이 있다. 이들중 상당수는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할 직장이 없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홍콩까지 가정부를 하러 온 고학력자들이다. 이들이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지에서 송금하는 돈이 필리핀 국내총생산(GDP)의 15~20%를 차지한다고 하니, 나라 살림의 상당 부분을 인력수출로 충당해야 하는 현실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현재 필리핀의 실업률(12%대)은 아시아 최고 수준이고, 연소득 270달러(약 28만원) 이하의 극빈층이 무려 35%에 이른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보화 현황도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휴대폰 사용자가 100명당 19명, PC 보급현황이 100명당 2.77대에 불과하다. 전체 인구 8600만 명 가운데 인터넷 이용자는 350만명밖에 안된다.
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문화진흥원(KADO)은 노무현 대통령의 필리핀 국빈방문과 때를 맞춰 12월15일 마닐라에서 ‘IT 초청연수생 간담회’를 가졌다.
‘IT 초청연수생 간담회’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해외 IT 전문가 초청연수 사업’에 의해 한국을 다녀간 연수생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일종의 동창회 모임으로, 양국의 IT 협력 네트워크를 다지는 성격을 띠고 있다.
필리핀 IT정책 담당자 등 3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은 “동아시아 공동의 번영을 위해 IT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매우 크다”고 강조한 뒤 “한국 정부는 필리핀 정보화를 위해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격려했다.
진대제 장관이 강조한 `동아시아 공동의 번영'은 지난 14일 제1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채택한 ‘콸라룸푸르 선언문’의 주된 내용이다. 이 지역 회의체는 궁극적인 목표가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 및 경제적 번영의 도모다.
사실 한국 정부는 EAS 출범 이전부터 그 설립 정신을 실행해오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지난 1998년부터 해외 IT전문가 초청연수 사업, 개도국 정보접근센터 구축, 해외인터넷청년봉사단 운영 등의 글로벌 정보격차 해소 사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우 지금까지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4개국에 정보접근센터를 구축했고, 33개국 IT정책 담당자 1,220명을 초청연수했으며, 해외 인터넷청년봉사단도 16개국 717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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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4일 말레이시아 교민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리는 금전적으로 아직 큰 부자가 아니고 여유가 생긴 것도 역사가 짧아 돈으로 다른 나라에 보태주는 액수는 보잘 것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 나라에서 돈을 많이 낸 사람보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받고 호감을 산다”며 이는 “한국민의 뛰어난 장기”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 말처럼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의 해외 사업은 그 액수로 보자면 그렇게 크지 않은 규모다. 그러나 사업을 진행하면서 돈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휴먼 터치’ 즉 인간적 감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형식적인 연수에 그치지 않도록 되도록 많은 시간을 연수생과의 교감에 쏟는 것이다. 이 때문에 IT 초청연수로 한국을 방문했던 이들의 반응 등은 매우 뜨겁다.
15일 모임에서도 필리핀 IT 관계자들은 “한국을 다녀간 경험 때문에 최근의 ‘대장금’ 열풍이 더욱 반갑고,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립다”며 “한국의 최첨단 디지털과 전통문화를 두루 접할 수 있는 초청연수 같은 사업을 앞으로 더욱 확대해주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일명 ‘KADO 월드넷’이라 불리는 IT 초청연수생 간담회는 지난 11월 튀니지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올해만 해도 9번째 열렸다. 지난 13일에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도 열렸다. 이를 통해 지한파, 혹은 친한파 인사들의 IT 네트워크가 구성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