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은행장과 격투왕

[기자수첩]은행장과 격투왕

진상현 기자
2006.01.19 17:44

지난 18일 한 러시아 사나이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 사나이의 이름은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종합격투기 '프라이드'의 세계 최강자다. 그의 별명은 다양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싸움을 잘한다고 해서 '60억분의 1'로 불리기도 하고 결점이 없는 완벽한 선수라는 의미에서 '무결점의 사나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별명은 '얼음주먹'. 무표정한 표정에서 얼음장 같은 냉정한 주먹을 내린 꼿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평소에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안한 모습이다가도 링에만 올라가면 누구보다 강한 사나이가 된다.

격투왕 효도르의 방한 소식을 접하면서 국내 은행권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국민 신한+조흥 우리 하나 등 은행 '빅4'의 리딩뱅크를 향한 경쟁이 흡사 격투전을 방불케 한다. 특히 최근 일부 은행장들간의 설전은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자꾸 벨트 아래를 가격하면 나도 뒤통수를 칠 수 밖에.." 라고도 하고 한 은행이 토종은행론을 들고 나오자, 다른 시중은행장은 "다른 은행은 다 비(非)애국자고, 자기만 애국자라니.."라든가, "(LG카드 사건 때) 지키긴 뭘 지켰나"라며 감정적인 대응을 하기도 한다. 다른 은행장도 "동북아 금융허브를 지향하는 마당에 토종은행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거든다.

물론 은행장들이 체면 불구하고 설전을 벌이는데는 리딩뱅크 경쟁에서 탈락하고 매물로 전략할 수도 있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기싸움에서도 지면 안된다는 고민도 엿보인다.

하지만 최근 은행권의 시비, 특히 은행장들의 설전을 보는 시각은 곱지 않다. 감정 싸움으로 치달으면서 소모전이 된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은행간의 일전이 불가피하다면 링위에서 제대로 싸웠야 한다는 생각이다. 은행권 승부에서도 뜨거운 '설전' 보다는 냉철한 '얼음주먹'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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