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어글리 아메리칸

[광화문] 어글리 아메리칸

정희경 경제부장
2006.03.16 09:31

"장 마감 전 빠져 나올 수 없는 것에 투자하지 말라. 모두 거래에서 탈출구를 찾아라."

1990년대 중반 20대 미국 청년의 `일본 공략기'를 담은 논픽션 `어글리 아메리칸'(Ugly Americans)에 소개된 헤지펀드의 첫번째 투자원칙이다.

주인공 존 말콤(가명)은 미국의 명문 프린스턴대 출신으로 일본어를 전혀 모른 채 영국 베어링은행 계열의 투자회사에 취업했다. 그의 첫 사수는 20억달러의 손실을 내고 베어링을 파산으로 몰고간 닉 리슨이었다.

말콤은 결국 회사를 옮겨 헤지펀드의 거물로 불린 딘 카니 밑에서 닛케이선물 등 파생상품을 다루게 됐다. 그는 홍콩 항셍지수에 `퍼시픽 센추리 사이버웍스'(PCCW)가 편입되는 것을 계기로 불과 3분 만에 2000만달러의 차익을 챙겨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당국이 PCCW 주식을 공개매입할 것이란 일반적인 관측과 달리 장외거래를 통해 주식을 확보한다는 정보를 입수, 막판 공매도한 게 적중했다.

말콤의 일본 탈출구는 닛케이선물이었다. 그는 닛케이지수에 주요 기술주들이 편입된 직후 1주일간 닛케이선물을 공매도했다. 동시에 편입된 종목들을 매수했고, 여기에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 자산 10억달러를 `올인'했다.

주가지수와 개별종목 주가의 일시적인 괴리를 간파했던 그는 5일째 되는 금요일 마감 직전 포지션을 모두 정리해 무려 5억달러의 차익을 남겼다. 말콤은 동료와 함께 성과급(차익의 15%) 7500만달러를 받아 일본을 성공적으로 떠났다.

그는 일본에서 만난 여인과 버뮤다에 안착했고, 아시아를 투자대상으로 하는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다고 작가 벤 메즈리츠는 전했다.

책장에서 잠자고 있던 이 책이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은 최근 가열되고 있는 KT&G의 경영권 분쟁 `덕분'이다.KT&G(156,300원 ▲1,700 +1.1%)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있는 칼 아이칸이 말콤과 같은 대학 출신인 데다, 아이칸과 연합한 스틸파트너스가 이 책이 출간된 2004년 일본 화학업체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해 일본내 외자위협론을 자극했다는 점이 시사적이다. 일본은 스틸파트너스의 공격 등을 계기로 기업들의 M&A 방어수단을 보완한 회사법 개정안을 마련, 다음달 시행할 예정이다.

아이칸 진영을 `추한 미국인'으로 단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 사실 책 제목 중 `어글리'(ugly)의 의미는 `비열한'보다는 `호전적인' 또는 `달갑지 않은'에 가깝다. 말콤의 투자기법도 법을 위반한 게 아니어서 일본인들의 배를 아프게 했을지언정 비난의 대상은 못된다.

헤지펀드류의 아이칸 진영 역시 한국 법과 규정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 당국이 위법 여부를 주시하겠지만 별도의 조치를 강구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일본이 앞서 상대한 `어글리 아메리칸'이 국내에 속속 상륙하고 있고, 그들의 입성을 막을 수도 없다는 점이다. 자칫 호기에 눌려 있다 뒤늦게 가슴을 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헤지펀드의 공격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비난하고 있다. 헤지펀드에 관한 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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