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관계의 동물이다.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불완전한 상태로 태어나 문상객들의 배웅을 뒤로한 채 떠날 때까지 끈과 연을 맺으며 산다. ‘사람의 됨됨이를 알려면 그의 친구를 보라’는 말처럼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지식과 정보가 부(富)와 권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21세기에는 인맥(Human Network)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인맥지수(NQ:Network quotient)가 지능지수(IQ)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실력 있는 정치가, 고위 관료, 대기업 사장이나 은행장 등과 깊고 넓은 인맥을 갖고 있는 사람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발휘한다.
무리해서라도 서울 강남에 살며 자녀를 그곳 고등학교와 일류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것은 힘 있는 사람들과의 인맥을 만드는데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인맥은 부자가 되는 금맥(金脈ㆍWealth Connection)이 되기도 하고, 실력자를 만드는 권맥(權脈ㆍPower Connection)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정도가 지나치면 일을 그르치는 것처럼 좋게 시작된 인맥도 돈과 압력처럼 ‘부적절한 것’이 개입되면 ‘치맥(恥脈ㆍShame Connection)’이 된다. 컨설팅이 로비로 이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 톱뉴스로 떠오른 이른바 ‘김재록 게이트’가 대표적인 예다. 김재록 씨는 정ㆍ관ㆍ재ㆍ금융계의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외환위기 이후의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과정에서 눈부신 성과를 올렸다. 그의 인맥이 금맥과 권맥이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인맥에 끼이기를 원했고 그와 함께 지내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여전히 ‘법대로’ 보다는 ‘힘대로’ 이뤄지는 일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그가 검찰에 구속된 뒤 그와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은 대부분 발을 빼고 있다. ‘정승이 죽었을 때보다 정승집 개가 죽었을 때 문상객이 많다’는 세상인심처럼, 그리고 첫 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처럼, 인맥이 ‘치맥’으로 추락하고 있다.
인맥이 치맥으로 연결되는 것은 주식시장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친하니깐 당신에게만 알려준다’는 ‘대박 정보’를 연결고리로 인생이 망가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운이 정말 좋아 대박을 터뜨렸을 경우에도 다른 대박 정보를 찾다가 결국 쪽박을 차는 것으로 끝이 난다. 몇 번의 대박은 당국의 감시망에 걸려 옥살이를 하는 망신을 겪기도 한다. 잘되건 못되건 결과는 좋지 않은 ‘지는 게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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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건 쉬워도 지는 건 잠깐”(최영미의 시, 선운사)이다. 공부방을 정리하는 건 어려워도 어지르는 것은 순식간인 것과 마찬가지다. 좋은 인맥을 만드는 것은 어렵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치맥으로 치닫는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다.
인생은 아주 짧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80세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해도 길어봐야 100년이다. 수천만년이나 되는 문명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다. 이렇게 짧은 삶을 치맥에 연루돼 머리를 떨구면서 지내는 것은 얼마나 삶을 초라하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