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명의를 도용당한 죄(?)

[기자수첩] 명의를 도용당한 죄(?)

성연광 기자
2006.04.17 09:10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때를 놓쳐 후회하지 말고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자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국내 인터넷 업체들의 명의도용 사태를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가 명의도용 논란에 휘말렸다. 국내 최대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가 대규모 명의도용 사태로 한바탕 홍역을 치룬 지 채 2달도 안돼서다.

지난 10일 일부 인터넷 게시판에는 누군가 네이버에서 의도적으로 회원들의 명의를 조직적으로 도용했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이 게시글로 올라왔다. 이어 '자신과 자신의 가족명의가 도용됐다'는 댓글들이 터져 나왔다.

확인결과, 조직적인 명의도용이 있었다는 주장은 '억측'이었지만 일부 네티즌들의 명의도용 피해는 사실로 밝혀졌다.

이유야 어찌됐든 국민의 절반 이상이 이용하는 국내 최대의 포털 사이트에서조차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흉내를 내고 다녔다는 얘기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동안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을 뿐 인터넷 상의 명의도용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다수 포털과 게임 사이트에서 명의도용 피해사례는 이미 오래전부터 비일비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인터넷 명의도용 문제가 이처럼 심각해진 것은 그만큼 개인정보가 외부에 많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실제 아직까지도 공공기관 홈페이지에서는 물론 파일공유(P2P) 서비스에서 개인정보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에는 국내 초고속인터넷가입자의 60%에 해당하는 개인정보들을 무단 유출한 사범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우리나라 네티즌 상당수가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주민번호가 이미 공개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결론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개인정보 유출이나 명의도용 문제와 관련 인터넷 업체들의 대응은 고작 피해신고가 접수되면 계정을 삭제해주는 것에 그치고 있다. 더욱이 명의도용 입증책임마저 본인에게 떠넘기고 있다. 명의를 도용 당한것도 억울한데 자신의 명의가 아니라는 점을 본인이 밝혀야하는 것이다.

정부가 고심해 지난해 내놓은 인터넷 주민번호 대체수단 도입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것도 인터넷 업체들의 반발 때문이다. 이쯤에서 인터넷 업체들은 '소 한 두 마리 잃는 것 쯤‘하고 계속해서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다면 결국 모든 소를 잃고 외양간마저도 문을 닫을 수 있음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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