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한국경제 최대 위협은 ‘소비함정’

[광화문]한국경제 최대 위협은 ‘소비함정’

홍찬선 증권부장
2006.04.20 12:26

유가 환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소비함정 악순환'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게 산다. 월급이 몇 백만원인 샐러리맨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물론 연간 소득이 1억원이 넘고 재산이 수십억원인 부자들도 스스로는 부자라고 느끼지 못한다.

한국 사람이 가난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쓸 돈을 없게 만드는 ‘고비용 구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소득의 절반 이상을 자녀 사교육비로 떼어낸다. 소득이 많으면 과목당 몇백만원 하는 족집게 과외를 보내고, 소득이 적으면 수강생이 북적대는 학원에 보낸다는 차이가 있을 뿐, 사교육비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가장 많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득의 나머지 절반은 아파트 담보대출 이자로 낸다. 돈을 엄청 불리기 위한 ‘투기’가 아니라 대출받지 않으면 내 집 마련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이 담보대출이란 멍에를 지우고 있다.

소득의 70% 이상이 사교육비와 주거비라는 고정비용으로 나가다보니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일에 쓸 돈이 없게 된다. 그나마 금리가 낮고 아파트 값이 오를 때에는 그래도 ‘부의 효과’로 다소 소비할 여유는 있었다. 주가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주식 투자자들의 주머니 사정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그렇게 녹록치 못하다. 가계의 금융자산이 1000조원을 넘고 있지만 금융부채도 500조원에 이르는데다, 자산은 일부 부자들에 집중된 반면 부채는 중산층과 서민들이 갖고 있다. 금리가 높아지고 아파트 값이 정체 내지 하락하면 가계의 가용자금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위험은 고유가나 저환율(원화가치 상승)이 아니라 ‘소비 함정(Consumption Trap)’이란 우려가 일부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소비는 경제를 이끄는 중요한 엔진이다. 지난 1/4분기 성장률이 6.2%로 예상을 훨씬 뛰넘는 호조를 보인 것도 바로 소비가 증가한 덕분이다. 고유가와 환율하락 등으로 수출 증가세가 약간 둔화된 부분을 소비가 채워 ‘고성장’을 일궈낸 것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사람보다 힘들어지고 있다는 사람이 더 많다. 현장 경기를 직접 느끼는 택시 기사나 재래시장 자영업자뿐만 아니라 연봉이 수억원이나 되는 자산운용회사 CEO에 이르기까지 별로 차이가 없다.

현재 삶의 어려움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으로 연결되고 있다. 출산율은 1.17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출산율 저하는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현재 4.5% 수준인 잠재성장률이 2020년에는 2.9%로, 2040년에는 0.9%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저소비 능력이 출산율을 낮추고 저출산이 경제성장을 낮춘다. 개발초기엔 저저축이 성장을 가로막는 '빈곤의 악순환'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소비부진이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소비함정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경제를 이끄는 쌍두마차는 투자와 소비다. 소비는 현재 경기에 영향을 미치고 투자는 미래 경제를 좌우한다. 외환위기 이후 투자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투자를 자극하기 위해 금리를 크게 낮췄지만 투자는 늘지 않고 과잉유동성으로 인한 자산가치버블만 초래했다. 유동성함정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이제 소비마저 함정에 빠지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장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런 경고는 기우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소비 함정’의 우려가 기우로 끝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고비용 구조를 공고히 하는 사교육비와 주거비 부담을 낮추는 게 지금 바로 시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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