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당국이 전날(3일) 올들어 처음 직접적인 구두개입에 나섰다. 언론에 구두상으로 개입의지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최근 환율 하락 관련 외환당국의 시각'이란 자료를 배포함으로써 증거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달러환율은 오르지 못했다. 시간끌기용 블러핑(bluffing, 허풍부리기)이라는 것이 시장의 시각이다.
물론 서울외환시장 현물환 거래량이 100억달러를 넘어서면서 전날의 2배 가까이 이르렀기 때문에 대량 거래가 수반된 것은 맞다. 개입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러나 환율을 제어하지 못하는 개입은 개입이 아니다. 특히 최중경 국장시절의 개입에 익숙한 딜러들에게 장중 저점(917.1원)보다 0.9원 높은 918.0원에 끝난 장에서 개입이 있었다고 하면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당국이 총공세에 앞서 사전정지 작업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탄을 아끼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또는 개입을 못하는 상황에 처한 당국이 말로 때우는 것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최국장 이후 외환당국이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더 이상 행동하는 당국이 아니라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외환라인의 톱부터 밑에까지 어느 누구도 총대를 매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중앙은행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3년에 걸친 무모한 개입이 완패로 끝나고 국회에 불려나가 죽을 고생을 한 경험이 외환당국 전체에 큰 교훈을 줬다는 뜻이다.
원화 절상이 수출가격 경쟁력 저하 요인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킬만큼 6월 무역수지 흑자가 월간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주가도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고 정부가 나서서 경기가 호전된다고 공언하는 판에 소폭의 원화 절상이 무슨 문제냐는 판단이 내려져 있을 수 있다.
이렇다면 개입은 기대할 것이 못된다. 개입 경계감에 주눅들어 시장이 위축되고 환율하락세가 멈추면 대성공인 셈이다.
환율이 910원대로 떨어졌지만 지난해 12월 저점(913원) 위에 있는 상태에서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맞는지도 모른다.
환율이 추세적인 하락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도 개입에 나설 필요가 없는 요인이 될 수 있다. 1140원선 붕괴후 1000원선도 무너지고 930원선까지 일사천리로 급락하는 것이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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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920원선이 무너졌다고 900원선 붕괴를 보는 시각은 드물다. 추세라면 시장에 긴장감이 돌고 옵션 변동성이 상승하게 돼 있다. 그러나 현재 시장 반응은 시큰둥하다.
920원선 방어를 믿고 달러매수에 나섰다가 손절매도하면서 환투기 손실을 본 세력만 입이 나왔을 뿐이다.
한 딜러는 이렇게 말했다. "910원대로 내려섰지만 870원이나 850원선이 보인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925∼935원의 박스권이 915∼925원으로 10원 정도 낮아진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면 큰 그림을 그릴 이유도, 당국이 개입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930원선에서 달러매도헤지에 열을 올린 조선업체는 이제 920원대에서도 매물을 내놓을 것이다. 주가가 말해주듯 지독한 활황을 겪고 있는 조선업체가 당국의 개입 하나 때문에 환전략을 수정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지난해 2/4분기 100억달러를 내다 판 정도의 물량이 계속 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글로벌달러 약세 추세에서 이틀간 연저점을 경신한 원/달러환율이 하락추세 돌입의 전조를 보인 것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레벨 다운인지 분간이 어렵다.
당국도 개입을 안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침체 일색이던 시장에 변화가 왔지만 속이 편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