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재판매, 망(網)쏠림까지 해소될까?

통신재판매, 망(網)쏠림까지 해소될까?

윤미경 기자
2007.10.17 11:02

[컨버전스 시대, 網이 경쟁력이다(중)]①망불균형부터 해소해야

유무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광대역통합망(BcN) 환경에선 유선전화(VoIP)와 초고속인터넷, 이동전화, 방송상품을 묶은 결합상품 판매가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BcN환경에서 결합판매가 활성화되려면 무엇보다 망의 불균형부터 해소돼야 한다. 정보통신부가 제시한 '통신규제 로드맵'에는 과연 망의 불균형까지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담겨있는 것일까.

현재 결합판매시장이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망의 불균형에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선망사업자는 유선망이 없고, 유선망사업자는 무선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업자간 제휴로 돌파해 보려고 하지만 각자의 입장이 달라 '윈윈' 전략이 성립되기도 쉽지 않다.

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정통부는 KT와 SK텔레콤 같은 지배적사업자의 망도매를 의무화하는 '재판매 의무화법안'의 입법을 추진중이다. 유선(가입자망)이나 무선(주파수)이 없으면 망을 도매로 빌려서 BcN환경에서 결합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차원이다.

그러나 '재판매법'이 유·무선 교차진입을 완벽히 허용하는 대안이 될지 의문이다. 무선, 즉 이동전화는 일찍부터 재판매시장이 틈새로 열려 있었지만 유선은 가입자선로 공동활용(LLU)만 허용된 상태다. 유선망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도입된 LLU는 높은 요율로 오히려 망원가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며 사실상 제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자 자율로 접속요율을 정하도록 하는 '재판매법'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경쟁촉진을 위한 BT의 선택

이미 유선시장에서 도매상품(WLR)을 의무화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7개국은 WLR가 지닌 일괄구매와 통합고지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유선시장 경쟁 활성화의 촉매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영국과 호주 등은 복안으로 유선지배적사업자의 필수설비를 분리했다.

'유선전화+초고속인터넷+이동전화+방송'의 쿼드러플 플레이서비스(QPS)가 가능한 BcN환경을 구축하려면 네트워크(망)가 수직통합돼야 한다. 그래야 통합단말기로 이 4가지를 언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원샷'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수직통합된 망구조에선 유선 필수설비, 즉 가입자망이 갖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점이다. 필수설비는 소비자와 접점을 이루는 시내망을 비롯해 관로, 전주까지 일컫는다. 무선과 달리 유선은 이 필수설비를 대체하거나 복제할 수 없기 때문에 BcN환경에서 유선 가입자망이 없으면 컨버전스 서비스는 '반쪽짜리'로 전락한다.

2005년 영국이 유선 쪽 지배적사업자인 BT의 필수설비에 대해 '조직분리'를 서슴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의 통신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의 알렉스 블라워즈 인터내셔널디렉터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영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컨버전스 촉진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있지만 필수설비에 대한 규제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영국은 BT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서 사실상 경쟁이 어렵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BT 가입자망 분리를 추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BT가 필수설비를 '오픈리치'라는 조직으로 분리한 이후 영국의 전체 2300만가구 가운데 15만가구에 불과하던 LLU는 200만가구로 늘었고, WLR도 350만회선으로 증가했다. 블라워즈 디렉터는 "WLR 350만회선 가운데 50%가 초고속인터넷"이라며 "컨버전스 환경에선 초고속인터넷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고 못박았다. 조직분리 이후 경쟁이 치열해져 요금인하가 가속화됐음은 물론이다.

2002년 텔레콤이탈리아도 도매와 소매조직으로 분리해 네트워크를 중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BT처럼 가입자망을 별도 조직으로 분리한 것은 아니지만 텔레콤이탈리아는 도·소매 조직분리 후 업무효율을 높였고 원가도 투명해졌다. 텔레콤이탈리아 관계자는 "LLU가 250만가구 정도 증가했고, WLR 회선도 늘었다"고 밝혔다.

호주 텔스트라도 마찬가지다. 호주 통신규제기관인 ACCC는 유선지배적사업자인 텔스트라에 가입자망 접속의무를 부과하기 위해 LLU를 비롯해서 CPS 등 각종 규제를 도입했다. 회계분리까지 단행했지만 반경쟁적 행위 여부를 조사하는 데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지난해 6월 소매·도매·네트워크로 조직분리를 결정했다. 이어 7월에는 WLR까지 도입했다.

◇EU-일본까지 '필수설비 규제' 움직임

필수설비에 대한 조직분리 움직임은 영국과 텔레콤이탈리아, 호주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브리티시텔레콤(BT)의 조직분리에 영향을 받은 유럽연합(EU) 통신위원회는 프랑스텔레콤과 독일텔레콤 등 유럽 각국 유선통신사업자를 향해 "조직분리를 도입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EU 통신위원회는 10월중 관련법안을 마련해 늦어도 연내 이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벼르고 있다.

EU 통신위원회가 이처럼 각국 유선지배적사업자에 대한 규제강도를 높이는 이유는 이미 시행 중인 LLU나 WLR 같은 유선 도매규제나 회계분리 만으로 망 접속 차별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서비스 경쟁이 궁극적으로 설비기반 경쟁을 부추기는 '투자의 사다리' 효과를 거두려는 EU 통신위는 수직통합되는 유선망구조에서 규제의 결실을 얻으려면 '조직분리'가 전제돼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가까운 일본도 NTT에 대한 조직분리 검토를 2010년부터 본격화할 예정이다. 지난해 9월 '신경쟁촉진 프로그램 2010'을 발표한 일본 총무성은 NTT가 2000년 NTT동과 NTT서 그리고 NTT커뮤니케이션으로 조직을 분리했지만 이것으론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동서 분리 후 LLU 시행으로 54개 업체가 새로 진입하고 초고속인터넷 경쟁도 촉진됐지만 유선점유율은 여전히 92.5%라는 것이다. 게다가 차세대망의 근간이 되는 가정내광가입자망(FTTH) 점유율이 69%로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 규제기관은 컨버전스 시대에 부응하는 규제틀을 개편하느라 분주하다. 규제틀의 개편방향도 우리와 똑같이 소매규제는 철폐하고 도매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효과적인 도매규제를 위해 '필수설비 분리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가 있다.

해외 사례를 비춰봤을 때 '재판매법' 자체가 망의 불균형 해소방안은 아니다. 초고속인터넷을 중심으로 수직통합되는 컨버전스시장에서 망의 불균형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않으면 재판매에 따른 도매규제도, 결합판매를 통한 경쟁 활성화도 결국 실패할 수 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우리도 한번쯤 재점검해 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용어설명】

■ LLU(Local Loop Unbundling)=이용자와 직접 연결돼있는 교환설비로부터 이용자까지 구간에 설치된 선로를 공동활용하는 제도.

■ WLR(Wholesale Line Rental)=기존 유선사업자로부터 가입자망을 도매로 구입해 자사 가입자에게 소매로 제공해주는 '가입자망 도매상품'.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