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시피 언어란 오묘함 그 자체다.
같은 낱말, 같은 음성으로 말해도 상황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얼굴표정에 따라,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얼마든지 뜻이 달라질 수 있는 게 언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세치 혀가 칼이 되어 일으키는 설화(舌禍)로 결국 누군가는 피를 보게 하는 것도 말이다.
의사전달과 표시, 소통과 이해를 위한 언어가 오히려 단절과 장애, 오해를 낳는 것은 인간사(史)에서 필연이자, 아이러니다.
지난 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2주일 만에 국민들에게 사과를 했다. 탈세논란으로 사퇴한 톰 대슐 보건장관 임명자 때문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망쳤고,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내가 실수한 것인가? 물론이다. 그리고 나는 책임을 질 각오가 돼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며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통석의 념'(痛惜의 念)'이라는 일본인조차 잘 모르는 이상한 말로 과거사를 정리한 아키히토 천황이나, "마리화나는 피웠지만 연기는 삼키지 않았다"는 절묘한 실토로 대마초 흡연 논란을 잠재운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달리 오바마는 '실수', '사과' 등의 정확한 언어를 사용했다.
오바마의 정확한 언어 사용은 미국 국민과 소통을 원활히 하는 효과를 낸 반면 아키히토의 발언은 두고두고 한·일양국 간 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클린턴의 절묘한 실토는 헛웃음을 짓게 한다.
오바마의 깨끗한 사과는 앞서 8년 동안 미국을 집권하는 동안 좀처럼 사과를 하지 않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또한 책임소재 등으로 자기의 책임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보통 미국인들의 행태와도 크게 다른 것이다.
신선하다. 오바마의 사과에는 애매모호가 없다. 정확성이 높다. 소통의 단절을 일으키지 않는 디지털 식(式) 사과다.
독자들의 PICK!
말이란 정말 오묘한 것이어서 정확한 용어가 동원돼도 진정성을 의심받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바로 장담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겠지만 나 역시 장담하는 사람의 말은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언어 문제에 늘 민감한 직업 탓인지 톤이 높든, 낮든, 크든, 작든 장담은 미덥지가 않다.
신문과 TV를 보기가 많이 어려워진 것은 제법 오래 전부터다. 일방적인 주장과 사실이 뒤죽박죽이 돼있는 논조의 말과 의도에 눈이 아프고, 이내 심기가 불편하다. 분명 유리처럼 투명한 언어이지만, 날이 서 있어 읽고, 듣기가 아프다.
소통을 위한 언어가 아닌, 무기처럼 사용되는 언어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어는 상실된 채 유리알의 유희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싶다.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인권'과 '자비'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아름답고, 숭고한 언어들이 이런 흉악한 사건에 인용되는 것은 피해자 유가족에게는 언어도단이다.
신뢰와 위안, 공감이 없는 언어는 더 이상 언어가 아니다. 언어란 정말 묘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의식마저 혼란케 하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