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때론 인간적인 것이

[광화문] 때론 인간적인 것이

윤석민 국제경제부 부장
2010.05.26 07:29

아직 의혹만 무성하다. 심증은 가득하지만 딱히 물증은 없다.

지난 6일 글로벌 투자자들을 일순 얼어붙게 만든 뉴욕증시 대폭락 사태에 대한 진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하명을 받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나서 합동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도 의심의 눈초리는 한 곳으로 향한다. 매수 매도를 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순식간에 대량주문을 쏟아내는 고주파 거래(HFT) 등 기존 월스트리트의 자동화 장치들이 그날의 패닉을 에스컬레이트시킨 주요인이라는 것이다.

SEC은 지난 18일 중간 조사 결과 보고서에서 인덱스 변화를 거래하는 펀드, E미니 S&P 500선물 등과 같은 주가지수상품의 급락이 동시다발적으로 결합돼 다우지수가 한번에 1000포인트 가까이 빠지는 대폭락세를 보인 것 같다고 밝혔다. 물론 이를 부추긴 것은 전자거래 시스템이다. 메리 샤피로 SEC 의장은 일단 시스템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서킷 브레이커제를 확대 운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원인이 무엇이든간에 뉴욕 증시의 브로커와 투자자들은 어뢰처럼 순식간에 덮쳐 장을 아작낸 그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악몽의 20분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데 허탈감이 앞선다.

이들의 분노는 블로그나, 관련 댓글들에 녹아 있다. 그 중 주류는 ‘로봇을 죽여라’이다. 말을 바꾸면 "증시가 인간적 요인은 배제된 채 점차 로봇에 점령당하고 있다"는 우려감이다. 마치 컴퓨터에 지배된 기계인간이 인간을 말살하는 영화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킨다. 기실 트레이더들은 그날 `아! 세상이 이렇게 끝날 수 있구나`는 `둠스 데이(최후의 날)`를 경험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대대적인 시스템 손보기가 필요하다는 지적들이 난무한다. 그 중 격한 이들은 기계를 아예 파괴하자는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을 벌이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앞선 기술이나 새 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지난달 유럽 항공대란시 최신 제트기종들은 일체 뜨지 못했다. 화산재, 분진 등이 엔진에 빨려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펠러기종은 왠만한 여건속에서도 끄떡없이 운행해 빛을 발했다.

미 군당국은 최근 U-2 정찰기의 퇴역 시기를 연기했다. 1955년 현장 투입된 U-2 정찰기는 당초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은퇴시킬 계획이었다. 미 소 냉전이 심화하던 시기에 투입돼 최고의 스파이 첩보기로 각광 받았으나 대공 미사일에 격추되는 등 세월의 흔적에 점차 퇴물화된 때문이다.

U-2의 퇴역이 연기된데에는 웃지 못할 속사정이 담겨 있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인조정기를 본격적으로 작전에 투입했다. 무인조정기 `프레데터`는 일명 `드론`으로 불리는 원격조정 로봇들이다. 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운용하며 적을 발견, 공격할 수 있어 인명 희생을 최소화할 신병기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결과는 영 딴 판이다.

오히려 프레데터는 미군의 공격을 알리는 `앞잡이`가 됐다. 탈레반들은 이를 역이용, 미군의 진격 예상로에 부비트랩을 설치해 큰 전과를 얻었다. 결정타는 해킹이었다. 온라인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러시아제 소프트웨어만 깔면 프레데터가 전송하는 영상을 편안히 앉아 볼 수 있었다. 가격도 30여달러에 불과했다.

결국 미군은 인간이 직접 올라타 조정해 '믿음직한' U-2로 마음을 돌렸다.

이 U-2기는 이 시각에도 북한 영공을 넘나들며 북한군의 이상 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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