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선 턴어라운드]①50년 흑자기업 무너진 근본 원인은
더벨|이 기사는 10월19일(10:40) 머니투데이가 만든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2007년 11월 6일.대한전선(45,900원 ▲2,350 +5.4%)은 세계 최대 전선기업 프리즈미안(Prysmian Cables & System)의 지분 9.9%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신주 발행 유상증자 형태로 자금을 투자해 주요 주주가 되는 방식이었다. 대주주 골드만삭스와 합의해 약 5499억 원(3억9204만 유로, 1782만 주)을 투자, 2대 주주가 되는 계약이었다.
대한전선의 전략적 선택은 경쟁자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2007년 말 기준 국내 전선사 순위는 매출 기준으로 LS전선(3조1644억 원), 대한전선(2조786억 원), 가온전선(7663억 원) 순이었다.
가온이 LS그룹 일원인 걸 감안하면 대한전선은 1위의 절반 수준이었다. 하지만 업력과 기술력에서 뒤쳐지지 않던 2등이 글로벌 세계 1위(매출 7조 원)와 '피를 섞는'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은 산업 구도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제휴는 이후 세계 10대 전선사의 합종연횡을 촉발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상당했던 초반 기대와 달리 양사의 사업적 시너지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프리즈미안은 해저케이블과 초고압전력케이블 등 고부가 기술제품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한전선이 이를 흡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지분교류에도 불구하고 기술이전을 꺼리는 것도 문제가 됐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인해 프리즈미안 주가가 급락한 것은 대한전선의 조바심을 부추겼다. 주당 22 유로에 지분을 사들였지만 주가는 이듬해 10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보호 신청을 한 이후 5 유로 대까지 떨어졌다. 수천억 원을 쏟아 부었지만 실패한 인수합병(M&A)이라는 비판이 경영진을 옥죄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악수는 대한전선이 프리즈미안 지분 9.9%에 만족하지 않고 2008년 3월 파생상품 형태의 주식보유 계약을 체결한 것이었다. 대한전선은 프리즈미안에 대한 영향력을 높일 목적으로 2008년 3월 프리즈미안 지분 18.5%를 주식스왑 형태로 추후 확보할 수 있는 파생상품(TRS) 계약을 체결했다.
대한전선의 추가 매입 계획을 인지하지 못했던 골드만삭스는 로펌 등을 고용해 주주 간 계약(Shareholder's agreement)에 대해 지적했다. 그러나 대한전선은 주식스왑이 계약시점으로선 지분의 직접 보유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대응했다. 골드만삭스는 대한전선의 지분 취득 이후 60%에 가까운 지분을 분산 매각했던 상황이라 자칫 프리즈미안 경영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협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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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업적 시너지를 기대하며 지분 교류를 시작했던 양측은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면서도 신경전을 벌이며 팽팽히 대립했고 사업 협력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대한전선은 파생상품을 포함해 직·간접적으로 획득한 프리즈미안 지분 28.4%를 토대로 보다 큰 계획을 준비했다. 주가가 떨어지고 골드만삭스의 지배구조가 취약해지자 시장에 흩어진 지분을 공개매수 방식으로 사모아 최대주주가 되려던 야심이었다. 글로벌 컨설팅사인 맥킨지를 통해 인수 시너지를 분석하고 자금조달과 재상장을 통한 엑시트 플랜도 마련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가 되려던 이 계획은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 대한전선은 주식스왑 상품을 취득하기 위해 6939억 원을 추가로 쏟아 부었다. 이 자금은 안양공장 부동산 유동화를 통해 마련한 5500억 원에 유보자금을 더한 것이었다. 시장은 대한전선이 고정자산을 팔아 현금을 악화된 재무구조 개선에 활용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선택이 이뤄진 셈이었다.
2008년 말부터 2009년 상반기까지의 기간은 대한전선 옛 경영진의 고민이 최고점에 달했던 때다. 하나은행 등 채권단은 부채비율이 300%를 돌파하자 주의적인 메시지를 날리기 시작했지만 경영진으로선 당진공장 등 전선 본업에 대한 투자와 프리즈미안 공개매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대한전선은 산업은행을 비롯한 국내외 금융권과 외국계 재무적 투자자 등에 접촉해 추가 자금조달을 의뢰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프리즈미안 공개매수 자금을 한시적으로라도 구하려 했던 노력이다. 하지만 이 거창한 계획은 기존 채권단의 반대로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이미 국내에서 인수한 건설사들이 부실화되던 상황이라 대주단이 서로 발을 빼려하면서 상황이 악화된 것이다.
대한전선은 2009년 6월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MOU)을 맺으면서 프리즈미안 인수를 포기하고 말았다. 약정 체결 월에 파생상품 7.8%를 팔았고 그해 12월 나머지 10.7%도 청산을 완료했다. 6939억 원의 투자는 4587억 원의 손실을 기록하고 2352억 원만 회수되는 결과를 맞았다.
올 2월 대한전선은 채권단 약정을 해결하기 위해 프리즈미안 보통주 9.9%마저 처분하기로 하고 지분을 팔아 3677억 원을 회수했다. 22 유로에 산 주식을 12 유로 안팎에 손절매한 것이다. 결국 호기로웠던 이 적대적 M&A 계획에는 총 1조2438억 원이 투자됐지만 최종 회수금은 6029억 원에 불과했다. 세계 최고가 되려던 꿈을 꾼 대가로 6409억 원을 허공에 날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