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실적전망치 대목을 빼주시면 안될까요. ○○○에 혼나요."
얼마 전 기업 공시 책임자에게 받은 전화다. 이미 시장에 매출전망이 알려져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었지만 '○○○○억원'이라는 숫자가 나간 게 문제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주 많이 뭐라고 해요. 도와주세요"라고 애타게 재촉했다.
모든 정보가 공평하게 제공돼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거래소가 노력하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원칙론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는 점은 짚어봐야 한다.
조회공시도 유사한 사례다. 최근 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가 꼼꼼해졌다. 하이닉스 인수전 당시 인수설이 나돈 기업 모두에 조회공시를 요청,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인수후보를 가장 빠르게 알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밝힌 내용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하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혼선도 나타난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항인 데도 재차 조회공시가 나오면 시장에 떠도는 설로 여겨 혼란을 줄 수 있고, 조회공시 남발로 정작 필요한 정보는 묻힐 가능성도 있다.
조회공시의 상당부분은 주가 급등락 사유를 묻는 내용이다. 정치테마주로 묶인 기업들은 이를 피하기 어려운데, 대부분 "최근 주가급등과 관련해 따로 공시할 만한 중요한 정보가 없다"고 맥빠진 답변을 하기 일쑤다.
정치테마주 바람에 휘둘려 주가가 급등락한 한 기업은 "최대주주가 유력인사와 사적인 친분관계가 있지만 고유사업과는 무관하다"는 답변을 내놓아 화제가 됐다. 스스로 '정치테마주'임을 인정한 셈이어서다. 어찌 보면 솔직한 이 답변이 이례적으로 평가될 만큼 조회공시 답변은 무의미하고 관례적이다.
시장 일각에선 "한국은 까다로운 공시규정으로 기업정보를 구체적으로 받을 수 있는데다 실시간으로 기관, 외국인 투자 규모나 증권사별 종목투자 규모 등을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장"이라는 얘기도 있다. 모두 거래소의 공이다.
하지만 늘어난 정보 가운데 형식적이고 불필요한 것이 많은 게 사실이다. 투자자들의 혼선을 줄여줄 수 있도록 공시제도의 질적 개선을 고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