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에 20년 가까이 종사하면서 이렇게 지점을 많이 폐쇄하는 건 처음 봤습니다. 위기 후 업황이 턴어라운드할 때 업계 구도가 어떻게 바뀔지 예상할 수 없네요."

증권사가 몰려 있는 서울 여의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초만 해도 62개 증권사의 국내지점이 1744개에 달했으나 1년새 55개나 감소했다. 올 상반기 증권사의 임직원 수도 561명 줄었다.
최근 만난 증권사 관계자는 97년 도산한 일본 야마이치증권을 화제로 삼았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야마이치증권은 고객 예탁자산 24조엔에 117개 지점, 7500여명의 종업원을 둔 대형사였다.
탁월한 법인영업으로 호황기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버블붕괴 이후 법인영업을 통한 수수료가 감소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급기야 무리하게 자기매매를 통해 수익을 보전하려 한 것이 화를 불러왔다. 야마이치증권의 도산은 일본에 '금융빅뱅'을 일으켰다. 97년 이후 일본에서는 105개 증권사가 사라지고 100개 증권사가 또 생겨났다.
야마이치증권 파산의 가장 큰 이유로 잘못된 구조조정을 거론하는 이가 많다. 버블붕괴 후 주력사업이었던 법인부문의 영업인력을 개인부문으로 대폭 전환했는데 이것이 스스로 전력을 깎아먹은 꼴이 됐다는 얘기다.
문제는 위기 이후다. 단순히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자신의 색깔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구조조정을 하면 야마이치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일본 증권업의 위기 이후를 보자. 개인투자자의 거래대금이 줄어들고 온라인증권사의 개인브로커리지시장 점유율 확대가 이어지자 노무라와 같은 대형사들은 자산관리영업으로 자신의 색깔을 찾았다.
우리투자증권 우다희 연구원은 "자산관리영업으로 가닥을 잡은 노무라는 적시에 고객 요구에 부합하는 상품을 출시해 국내매출 비중을 높이고 고객 이탈을 막았다"며 "중소형사였던 마쓰이와 카부닷컴 등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위기를 넘겼다"고 지적했다.
위기는 두려움을, 두려움은 맹목을 부른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당장은 뜨거워 꺼야겠지만 위기 이후까지 고려하는 신중함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