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교육 오늘의 역사] 1098년 오늘, 1차 십자군 안티오크 함락

[MT교육 오늘의 역사] 1098년 오늘, 1차 십자군 안티오크 함락

MT교육 정도원 기자
2013.06.03 08:30
안티오크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성창'을 발견하고 있는 피에르 바르톨로뮤. /소장=베르사유 궁전
안티오크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성창'을 발견하고 있는 피에르 바르톨로뮤. /소장=베르사유 궁전

1098년 오늘(6월 3일) 1차 십자군이 안티오크를 함락했다.

◆1차 십자군, 1097년 10월 안티오크 포위 공성전 시작

안티오크는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와 로마 제국을 거치며 번영하던 동지중해 제일의 도시였다. 중동에서 이슬람 세력이 흥기하자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최전선 기지가 된 안티오크를 난공불락의 성벽으로 둘러쳤다.

성벽 덕분에 안티오크는 비잔틴 제국의 남동쪽에 치우쳐 있었음에도 비교적 오랫동안 제국의 영역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1085년 내부의 배신에 의해 셀주크에 함락되었다.

1차 십자군이 다가오자 안티오크 성주 야기 시얀은 1085년에 그랬던 것처럼 내응으로 성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안티오크 총대주교를 감금하고 그리스인과 아르메니아인 정교도들을 추방했다. 한편 십자군은 1097년 10월 안티오크 성밖 오론테스 강 유역에 도착해 포위 공성전에 돌입했다.

◆8개월여 간 지속된 포위 끝에 1098년 6월 3일 함락

포위전은 뜻밖에 길어져 해를 넘겼다. 십자군과 셀주크군의 사기는 다함께 떨어져 갔다. 십자군 내부에서는 공성과는 관계 없는 일이 계속됐다. 애초에 십자군 제후들은 비잔티움을 떠날 때 "점령한 땅은 비잔틴 황제에게 돌려주겠다"고 맹세한 바 있었다. 하지만 안티오크를 차지하고 싶던 보에몽 드 타란토는 책략을 꾸몄다. 그는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 1세가 붙여줘 십자군에 대한 조언이나 길 안내를 하던 타티키오스에게 "그대가 셀주크와 내통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죽이려는 자가 있다"고 겁을 주었다. 이에 타티키오스가 탈주하자 여타 제후들에게 "타티키오스가 탈주한 것은 비잔틴 황제의 배신이나 마찬가지"라며 "점령지 반환의 맹세는 이로써 무효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십자군은 성을 포위한 채 반목을 일삼고, 농성 중인 야기 시얀은 뚜렷한 수 없이 구원 요청만 반복하는 가운데 포위 공성이 무려 8개월간 계속된 1098년 5월, 마침내 모술의 영주 카르부카가 셀주크 군대를 이끌고 안티오크를 구원하기 위해 출발했다.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의 군세도 합친 대규모 군대였다. 그런데 이들은 곧장 안티오크를 구원하러 가지 않고 보두앵 드 볼로뉴가 점거한 에데사를 공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공성 자체가 실패하기도 했을 뿐더러 원군이 오고 있다는 사실이 십자군에 노출되는 결과를 불러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원군이 오기 전에 안티오크를 떨궈야 하는 입장이 된 십자군이 바빠졌다. 특히 안티오크를 자기 것으로 할 생각이었던 보에몽은 적극적으로 책략을 펼쳐 안티오크의 성문 위병장을 매수하는 데 성공했다. 1098년 6월 3일 갑자기 안티오크의 성문이 열어젖혀졌다. 들이닥친 십자군은 성내의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성내의 이슬람 교도들을 마구 학살하고 약탈했다. 심지어 매수되어 한편이 된 위병장의 형제까지 학살당했다. 야기 시얀은 혼란에 빠진 안티오크를 가까스로 탈출했으나 교외에서 자신이 추방했던 아르메니아 정교도에게 붙잡혀 목이 달아났다.

◆역포위당한 십자군, 성창 발견 기적(?)으로 적군 물리쳐

안티오크를 정신없이 약탈하던 십자군을 카르부카의 원군이 도착해 포위했다. 성이 함락된 지 불과 이틀 뒤, 이틀 전의 공성군은 역으로 포위당해 농성군이 되고 말았다. 안티오크 함락 소식을 듣고 권리 주장을 하기 위해 오던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 1세는 안티오크가 셀주크군에 의해 역포위되었다는 말을 듣자 비정하게 비잔티움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포위된 십자군이 정신을 차려보니 안티오크에는 식량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성은 몇 개월 동안이나 그들 자신에 의해 포위돼 있었기 때문이다. 십자군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이 때 기적 혹은 기묘한 책략이 있었다. 십자군에 종군하고 있던 수도사 피에르 바르톨로뮤가 꿈 속에서 성 안드레아를 보았는데 "안티오크의 성 베드로 성당에 '성창'이 묻혀 있다"고 전했다는 것이다. '성창'이란 로마 병사 롱기누스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창이다.

미신적인 성향의 십자군 제후 레몽 드 생질은 이 말을 믿고 안티오크의 성 베드로 성당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한동안 파헤쳐도 이렇다할 것이 없던 차에 수도사 피에르가 구덩이 속으로 내려가 무언가를 주웠다. 성창이라기보다는 쇳조각에 불과했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그럴 듯 했다. 교황 사절 아데마르 주교조차 미심쩍어 할 정도로 작위적인 느낌의 기적이었지만, 이로 인해 십자군의 사기는 크게 고양되었다. 성문을 나선 십자군은 카르부카의 군대를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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