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여년 만에 가장 더운 6월,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다. 지난 4월에 이어 이달에는 일감몰아주기 규제강화(이하 대표발의: 정호준 민주당 의원), 신규순환출자 금지법(남경필 새누리당 의원), 금융회사 지배구조 법률(김기식 민주당 의원 등) 등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국회통과를 위해 줄을 서 있다.
정치권은 경제를 '민주'와 '반민주'로 재단하고, 6월 경제민주화법의 입법을 반대하는 쪽은 '헌법가치를 부정하는 세력'이라는 낙인까지 찍어가며 법안통과를 밀어붙일 태세다. 한쪽은 정의(正義)이고, 반대쪽은 부정의(不正義) 집단으로 몰아붙인다.
이런 이분법적 논의가 한국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할까?
유사 이래로 '정의에 대한 논쟁'은 동서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진행됐다. 이 가운데 정치권과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이 19세가 중반 영국의 제레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功利)주의다. '최대 다수의 최대의 행복이 최고의 선(善)이자 정의다'는 철학개념이다.
최근 논의되는 경제민주화는 '부의 분배'와 관련된 공리주의적 입장으로 흐르는 측면이 강하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정의롭고, 옳은 분배는 사회구성원 최대의 만족이 산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수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손실을 강요하는 것은 정당화된다. 합의되지 않더라도 부자의 주머니에서 빼내서 여럿에게 나눠줘 만족을 높이면 정의롭다는 인식이다.
최근 경제민주화 과정은 다수의 중소기업과 소수의 대기업을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구도로 규정하고, 대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박탈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진정한 '공정으로서의 정의(보편적 정의)' 측면에서는 자유와 권리는 다수의 이익보다 우선한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게 '공정으로서의 정의'다.
'다수의 정의'는 누가 다수가 되느냐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 있고, 다수의 행복도 상황에 따라 변하므로 '다수의 정의'가 '보편적인 정의'는 아니다. 다수의 정의를 기반으로 법과 제도를 바꿀 경우 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지난해 통과돼 올 1월부터 시행한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 현실을 보자.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55개에 속해 있는 시스템통합(SI) 대기업은 정부의 공공발주 부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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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다수의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소수의 대기업의 경제상 자유를 제한한 조치다. 국회의 입법으로 다수의 정의를 실현한 듯 보인다.
시행 6개월이 지난 현재 '정의'는 실현됐을까. 들리는 얘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컨소시엄 형태로 진행됐던 다수의 대형 프로젝트는 자취를 감췄다. 정부에서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소형 프로젝트만 소소하게 발주해 중소기업간 가격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줄어든 물량으로 중소SI 업체들이 위기에 빠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또 호랑이 없는 숲에 여우가 왕 노릇을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기업이 빠진 시장에서 '갑'의 위치에 오른 '중견' 기업의 횡포에 시달리는 하청 중소기업, 2, 3, 4차 하청업체의 먹이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현금 결제는 줄고 3개월, 6개월 어음이 다시 나타나 하청업체들의 자금난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문제는 공정위라도 나섰지만 3·4차 하청업체들의 어려움은 공정위의 관할 밖에 있다.
지난 1월 법 개정을 바랐던 이들 중소기업들이 6개월이 지난 현재 SW산업진흥법 개정안을 정의롭다고 볼까?
정치철학자인 존 롤즈에 따르면 정의는 내가 어떤 위치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와 같은 것이다. 국회가 이같은 입법에 나서는 취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일부 대기업들이 잘못된 행동으로 시장을 흐리는 등의 문제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법을 만들 때 '다수의 정의'가 아닌 '보편적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법이 오래갈 뿐더러 피해자도 생기지 않는다. 그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