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컨슈머' 앞에서 더 움츠러드는 中企 왜?

'블랙컨슈머' 앞에서 더 움츠러드는 中企 왜?

송정훈 기자
2013.11.04 06:31

203개 기업 중 83%가 "악성 민원 그대로 수용한다" 답해..중기 피해사례 속출

#최근 중소 건강용품 전문브랜드인 A사에 2년 전 자사 건강용품을 구입한 고객 김 모 씨가 민원을 제기했다. 김 씨는 "온열 기능에 문제가 발생해 어깨 주위에 화상을 입었다"며 기존 제품을 새 제품으로 교환해 달라고 요구했다.

A사는 김 씨에게 건강용품 수리를 제안하는 한편, 진단서 제출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 씨는 이같은 요청을 거절한 채 한국소비자원 등에 같은 민원을 제기하고, 언론에도 민원내용을 알리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대기업처럼 탄탄한 브랜드 인지도가 구축돼 있지 않아 부정적인 언론보도나 인터넷 게시물 하나로 무너지는 게 현실"이라며 "회사차원의 해명이나 법적대응이 아니라 억지 요구인 것을 알면서도 들어줘야할 상황"이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중소기업이 블랙컨슈머의 집중표적이 되고 있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악성민원에 대한 대응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은 부당한 요구를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수용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이같은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까 노심초사하기까지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4월 203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170개사(83.7%)가 소비자의 악성 민원을 '그대로 수용한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 10곳 중 8곳 이상이 블랙컨슈머에 당한다는 얘기다.

유형별로는 제품 사용 후 반품(환불)이나 교체가 106개사(62.4%)로 가장 많았고 보증기간이 지난 제품 무상수리도 26개사(15.3%)였다. 특히 적정수준을 넘는 과도한 금전적 보상도 17개사(10%)로 조사됐다.

더욱 큰 문제는 오히려 피해자 입장인 중소기업이 블랙컨슈머가 외부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는 점이다. 악성 민원 해결과정에서 기업이나 제품 이미지가 훼손될 경우 매출 감소는 물론 자칫 회사의 존립기반 자체를 흔드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어서다. 때문에 이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블랙컨슈머에 눈물짓는 중소기업수는 통계수치에 비해 훨씬 많을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1본부장은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중견기업이나 대기업과 달리 블랙컨슈머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며 "블랙컨슈머에 대해 외부에 알리기를 꺼리다 보니 블랙컨슈머가 계속 늘어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대한상의 조사에서도 소비자의 악성 민원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응답자 중에서 부당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이유로 153개사(90%)가 '기업의 이미지 훼손 방지'를 꼽았다. 이어 고소·고발 등 상황악화 우려가 9개사(5.3%), 업무방해를 견디기 어려워서가 7개사(4.1%)였다.

최복희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브랜드 파워는 물론 매출이나 이익 규모가 크지 않고 제품 판매채널 등 판로 확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런 마당에 블랙컨슈머 문제를 해결한다고 몇개월에서 최대 1년 정도를 소요하다 기업이미지는 훼손되고 매출까지 줄어들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소기업의 품질과 서비스, 민원 대응 능력이 떨어지고, 국내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은 점도 중소기업이 블랙컨슈머의 주타깃이 되는데 한몫을 하고 있다.

허경옥 성신여대 생활문화소비자학과 교수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과 비교할 할 때 상당수 중소기업의 품질과 서비스는 물론 민원 전담 조직과 인력이 부족해 블랙컨슈머 대응 능력이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중소기업 제품이나 서비스라도 대기업보다 떨어지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어 악성 민원이 늘어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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