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 RBC제도 강화 취지는 알겠는데…

보험사 RBC제도 강화 취지는 알겠는데…

이병건 동부증권 기업분석1팀장
2013.11.19 14:00

[머니디렉터]

↑이병건 동부증권 기업분석1팀장
↑이병건 동부증권 기업분석1팀장

한나라 고조가 진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함양에서 철수하면서 그 지방의 유지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고통을 받아 왔소. 이제 그것을 풀어 주겠소. 법률은 다음 3장으로 하고 그 외는 폐지하겠소.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사람을 상처 입힌 자는 유죄, 남의 물건을 훔친 자도 유죄. 이상이오. 그리고 모든 관리나 백성은 원래대로 안심하고 일에 힘쓰도록 하시오. 두려워할 필요는 없소."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

소위 약법삼장(約法三章)으로 알려진 고사이다. 물론 한고조의 약법삼장이 간단한 3개의 조항뿐이었을 리는 없다. 실제로 천하를 통일한 후 한고조도 '삼장의 법으로는 간사한 자들을 막을 수 없다'고 느껴 소하에게 률을 만들게 하고 진나라 법률인 '법경'의 육편을 회복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민심을 얻기 위한 한고조의 조치를 결코 폄하할 수만은 없는 것이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제도가 의도하는 바를 간명하게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취지를 가지고 멋진 말로 아무리 많은 것을 이야기하더라도 듣는 사람은 알아듣기 어렵다. 한고조의 약법삼장이 죄지은 자를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탁해진 사회질서를 회복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듯이, 모든 제도는 그 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최대한 간단하게 설계되고 명확하게 시행돼야 한다.

그런데 최근 보험관련 제도 변화의 동향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는 그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몽매한 백성들로서 그 제도의 목적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나타나고 있는듯해 씁쓸한 마음을 지우기 어렵다.

우선 보험사에 대한 자본적성성 규제인 RBC제도를 살펴보면 제도강화의 취지에는 공감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세부적인 사항에 있어서 이론적인 정합성과 실제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듯하다.

최근 감독당국은 변동금리가 최저보증이율을 밑도는 경우의 듀레이션 적용에 있어서 슬라이딩 방식 적용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기존에는 변동금리가 최저보증이율을 밑돌 경우 만기에 따라 고정금리에 준하는 듀레이션을 적용하던 것을, 최저보증이율 상하 1%포인트 씩 총 2%포인트 범위 내에서 듀레이션을 슬라이딩방식으로 높여 적용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물론 이 제도가 일부 보험사들이 최저보증이율 부담 때문에 공시이율을 인위적으로 높게 적용하는 것을 막아 보험회사의 건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대부분 보험사들의 RBC부담을 완화해준다는 실용적 목적에서 도입된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문제는 금리나 신용위험의 신뢰수준을 높이는 것과 달리 최저보증이율에 대한 슬라이딩 방식 듀레이션 적용은 이론적 근거를 찾기도 어렵고, 이 제도 시행을 통해 업계 관행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변동금리가 최저보증이율을 밑돌 경우 실질적으로 고정금리부채가 되며 따라서 고정금리에 준하는 듀레이션을 적용하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동금리가 이미 최저보증이율을 밑돌고 있음에도 슬라이딩방식으로 듀레이션을 높여나가는 것은 현실과 부합되기 어렵다.

더구나 슬라이딩 방식을 적용하는 구간이 왜 하필이면 1%포인트 구간인지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도 찾기 어렵다. 또한 이러한 방식의 듀레이션 적용이 보험사의 상품운용이나 자산운용에 어떤 구체적인 함의를 주려는 것인지도 불명확하다.

사실 이러한 규제의 혼선은 감독당국이 올해 초 표준이율 인하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들의 예정이율 인하를 불허한 데서도 이미 나타났던 것으로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 회사들의 예정이율과는 관계없이 표준이율에 따라 책임준비금을 적립하도록 하는 정말로 합리적인 표준책임준비금 제도가 이미 도입된 상황에서, 표준이율이 인하되었음에도 예정이율이 인하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제도적인 모순이다. 표준이율의 인하라는 것은 제도적으로는 예정이율을 인하하라는 신호로 해석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보험사의 자본적정성을 제고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고조도 결국 약법3장만으로 나라를 다스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자본적정성 제고를 위한 감독당국의 노력에는 전반적으로는 긍정적인 응원의 말이 결코 아깝지 않다.

그러나 제도의 원칙을 관철하고, 제도 자체를 넘어서 제도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충분히 이해시키려는 약간의 노력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아쉬운 감정을 토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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