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주총 직전 입장 밝힐 듯… 돌발 변수에 선택폭 좁아져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익모직의 합병 추진을 계기로 대기업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본격적인 입장 표명을 강요받고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가 양사의 합병안에 반대 의사를 피력하면서 잠잠한 수면에 돌을 던졌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삼성물산지분 7.12%(1112만5927주) 보유 사실과 함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계획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지분 취득 이유에 대해서도 경영 참가 목적이라고 공시했다.
삼성물산과제일모직(298,500원 ▼10,000 -3.24%)의 합병안을 두고 그동안 시장 분위기는 대체로 우호적으로 유지돼 왔다. 삼성물산 주가가 6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에 따른 합병 무산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삼성물산은 합병계획을 발표하면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액으로 보통주 기준 주당 5만7234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주요 주주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기류가 미묘하게 변하는 조짐이다. 무엇보다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을 두고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하다는 논리를 폈다는 게 문제다.
양사의 합병은 제일모직이 기준 주가에 따라 산출된 1대 0.35로 삼성물산을 흡수 합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합병 발표 전날인 지난 5월22일 종가 5만5300원을 기준으로 합병비율이 결정됐다.
앞서 삼성물산 주가는 지난해 하반기 내내 7만원대를 유지하다 올 들어 5만원대로 떨어진 뒤 합병이 발표된 지난달 26일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지난 3일 6만3000원까지 올랐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이를 바탕으로 합병 시점이 제일모직 지분 30% 이상을 보유한 삼성그룹 오너 일가를 비롯한 제일모직 주주에게 유리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국민연금은 곤혹스러운 처지가 됐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12일 기준으로 삼성물산 지분 9.79%(1558만8592주)를 보유하고 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비율을 내세워 반대 입장을 밝힌 만큼 입장 표명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익률 이슈로 시달리는 상황에서 섣불리 합병안에 찬성했다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합병안에 반대하거나 기권표를 던질 경우 국내 대표적인 기관투자자로 외국계 자본의 논리에 휘둘려 국가대표급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 국민연금까지 합병안에 반대할 경우 삼성그룹의 합병계획은 무산될 가능성이 적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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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과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모두 삼성물산 보유지분에 대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삼성물산이 감당해야 하는 자금은 1조5000억원을 넘는다. 국내외 다른 주주들도 국민연금을 따라 등을 돌릴 여지도 크다. 매수청구금액이 삼성그룹이 마지노선으로 밝힌 1조5000억원을 넘어도 합병을 강행할 수는 있지만 초기비용이 커진다는 점은 삼성에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마지막까지 신중하게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삼성중공업(32,350원 ▼650 -1.97%)과삼성엔지니어링(53,100원 ▼1,200 -2.21%)의 합병 추진 당시 주주총회 전날 합병 반대 의사를 밝힌 뒤 주총에서는 기권표를 던지면서 주가 추이에 따라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능성을 열어두는 전략을 썼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돌발 변수가 부각되면서 '반대 표명 뒤 기권'하는 식의 손쉬운 방법을 쓰기가 애매하게 됐다"며 "이번 사례가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국민연금의 입장을 판단할 가늠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