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처벌만 앞세운 금감원, 예견된 패소

[우보세]처벌만 앞세운 금감원, 예견된 패소

구경민 기자
2021.09.02 03:29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예견된 결과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제기한 해외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중징계 취소 행정소송에서 금융감독원이 패한 데 대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금감원은 DLF와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의 불완전판매를 문제삼아 금융 CEO들에게 줄징계를 내려왔다. 현재 중징계를 받은 금융 CEO들만 10명에 이른다.

금감원이 금융 CEO에게 중징계를 내릴 때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무리수'라며 갸우뚱했다.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충분하고 소송시 승산이 있다고도 봤다. 금감원이 근거로 내세우는 지배구조법 상 '내부통제 미비'가 CEO를 제재 할 법적 근거로는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면서다.

이번 재판부 결과도 예측대로였다. 재판부는 "현행 금융사 지배구조법령 아래에서는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이 아닌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으로 금융회사나 그 임직원에 대해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재 필요성만으로는 법적 근거 없이, 혹은 제재처분의 근거법령을 문언의 범위를 벗어나 확장 해석해 기본권을 제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금감원의 '잦은' 패소다. 금감원이 주요 금융사 CEO 등에 중징계를 내렸다가 패소하는 굴욕을 당한 사례는 적잖다.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황 전 회장은 2009년 우리은행장에 재직하던 시절 파생상품 투자손실과 관련해 은행법 및 은행업 감독규정을 고의로 위반했다는 이유로 직무 정지 3개월 상당의 중징계 제재를 받았다. 황 전 회장은 당국 압박으로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금융위와 금감원을 상대로 제재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가는 3년여 소송 끝에 2013년 제재 취소 판결을 끌어냈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도 금감원과의 소송에서 이긴 전력이 있다. 윤 회장은 2004년 국민은행 부행장 시절 국민은행과 국민카드 합병시 회계처리 부정 의혹으로 문책 경고를 받고 사임했다. 당시 고(故)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도 중징계로 물러났지만 10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2015년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명예를 회복했다.

2015년 박동창 전 KB금융지주 부사장이 ISS사건과 관련해 제기한 소송에서도 금감원은 최종 패소했다. 'ISS사건'은 박 전 부사장이 일부 사외이사의 재선임을 막기 위해 미국의 주주총회 안건 분석회사인 ISS에 내부 자료를 제공한 일을 말한다.

감독 부실은 뒷전으로 한 채 중징계 칼만 휘두르다보니 금감원의 '영(令)'이 서지 않는 형국이다. '자기반성 없는 책임 회피'란 비판도 나온다.

특히 금감원이 판단한 금융사 CEO 제재의 기반이 흔들린 만큼 금융당국이 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정확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실패한 칼춤을 매번 반복한다면 소송 때마다 리스크에 떨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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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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