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주의·충실의무 위반 인정 첫 사례…증권사에 손해배상책임 부여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채권형 랩 상품 관련 고객에 손실을 입힌 증권사에 대해 최대 70%를 배상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증권사의 선관주의(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충실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한 최초의 조정결정이다.
금감원 분조위는 채권형 랩 어카운트(랩) 상품 투자손실과 관련 증권사가 고객에게 입힌 손해의 60~70%를 배상하도록 조정결정했다고 30일 밝혔다.
분조위는 증권사가 채권형 랩 상품을 운용하면서 CP(기업어음)·채권을 시장금리에 비해 높은 가격으로 매수하고 만기 미스매칭 전략을 취하면서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해 고객에게 손해를 입힌 행위에 대해 증권사의 선관주의·충실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자본시장법은 투자일임업자가 투자자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로서 투자일임재산을 운용해야 하고(선관주의) 투자자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해당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충실의무)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분조위 결정은 이를 인정한 첫 사례다.
분조위에 따르면 분쟁조정 신청인 A씨는 2023년 채권형 랩 상품에 800억원을 넣었다가 4억6000만원의 손실을 봤다. 상품을 판매한 증권사는 랩 상품 만기일 하루 전 '운용역의 행위로 손실이 발생해 내부 감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환매를 연기했다.
신청인 B씨는 2023년 채권형 랩 상품에 150억원을 투자했다가 증권사로부터 평가손실이 약 4억5000만원 발생했다고 통보받았다. B씨는 CP 고가 매입·만기 미스매칭 운용 사실을 확인해 증권사에 운용중단을 지시했다. B씨는 만기 이후에도 당시 CP 가격 하락 등으로 환매가 어려워 상환받지 않고 계속 보유하다 최종적으로 150억3000만원을 돌려받았다.
채권형 랩 상품은 증권사가 고객과 1대1 계약을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상품이다. 다수 고객자산을 집합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개별 고객의 투자 목적과 자금 수요를 감안한 단독 운용이 가능해 법인고객의 단기자금 운용 수단으로 선호됐다.

분조위는 증권사가 대부분 시가보다 고가에 CP·채권을 매수한 행위, 채권형 랩 상품 만기가 임박한 시점에서 잔존만기가 장기(10개월)인 채권·CP를 편입하고도 시장상황 변화 등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를 소홀히 해 평가손실을 발생시킨 행위를 모두 선관의무·충실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더불어 금감원 검사결과 해당 상품을 판매한 증권사의 상당수 고가매수 거래 동기가 다른 고객의 목표수익을 맞춰주기 위한 '제3자 이익도모'에 있었다는 점, 과거에 유사한 불건전 영업행위로 제재를 받고도 재발방지 노력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증권사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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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비율은 신청인 A씨에 대해 손해액의 70%, B씨에 대해서는 손해액의 60%로 적용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가 A씨에게 12억6000만원, B씨에게는 3억9000만원을 각각 배상하도록 결정했다.
배상비율은 법원의 관련 1심 판결(배상비율 70%), 과거 사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손해액은 법원 판결과 동일하게 신청인이 만기시 상환받을 수 있었을 수익·원금과 실제 상환받은 금액의 차이로 판단했다.
조정결정은 양 당사자가 조정안을 제시받은 날부터 20일 이내에 조정안을 수락하는 경우 성립한다.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
분조위 관계자는 "선관주의·충실의무 위반 여부를 판단한 최초의 조정결정으로 고객 재산을 위법하게 운용할 경우 행정상 제재뿐 아니라 민사상 책임도 부과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앞으로도 증권사의 건전한 채권운용 관행 정착을 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