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비즈니스모델 버려야 산다"

"낡은 비즈니스모델 버려야 산다"

대담=윤미경 정보미디어부장겸 문화기획부장 정리=송정렬기자
2010.01.25 09:31

[머투초대석]이상철 통합 LGT 부회장 "탈통신으로 新시장 개척"

통합LG텔레콤이 연초 통합법인의 닻을 올리면서 ‘탈통신’을 선언했다. 기존 통신시장에서 현금마케팅을 해서라도 가입자 끌어모으기에 올인하는 낡은 비즈니스모델을 과감히 벗어나, 통신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통신업계에서 탈통신은 새로운 화두는 아니다. 이미 KT와 SK텔레콤 등 경쟁사들도 통신사업 역량을 기반으로 카드 등 이종산업과의 컨버전스를 추진하며 다른 영역을 넘보고 있다.

하지만 LG텔레콤이 외치는 탈통신의 울림은 경쟁사와는 다르다. 단순한 구호를 넘어 생존과 성장을 위해 몸부림치는 만년 3위 업체의 절박함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사실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 등 LG그룹 통신 3사가 한지붕 아래로 뭉치면서 통합LG텔레콤은 연매출 규모 8조원대 거대 기업으로 변신했다. 통신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갖췄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연매출 19조원대의 유선공룡 KT와 12조원대 이통시장의 절대강자 SK텔레콤 앞에서는 여전히 초라한 규모다. 더구나 포화된 통신시장에서 이들과 사투를 벌여야하는 경쟁구조는 하나도 변한 게 없다.

LG텔레콤이 20개 탈통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발빠른 탈통신 행보에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탈통신을 통한 LG텔레콤의 새로운 도약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상철 대표이사 부회장을 만났다.

8년만에 통신판으로 돌아온 이 부회장은 취임 초부터 임직원들과 끝장토론도 마다하지 않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얼굴엔 피곤함 보다는 여전히 트레이드마크인 미소와 함께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 8년만에 통신시장으로 돌아온 이상철 통합 LG텔레콤 부회장. 그는 "통신시장은 바뀌었는데, 업체들의 영업방식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유동일 기자 eddie@
↑ 8년만에 통신시장으로 돌아온 이상철 통합 LG텔레콤 부회장. 그는 "통신시장은 바뀌었는데, 업체들의 영업방식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유동일 기자 eddie@

2003년 정보통신부장관을 역임하고 통신을 떠나신지 8년만에 다시 돌아왔다. 당시와 비교하면 현재 통신시장은 어떤가.

통신시장은 크게 변했는데 통신업체들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KTF 사장을 할 때도 통신업체들은 보조금으로 가입자를 모집하는데 주력했는데 지금도 영업형태를 똑같다. 비즈니스모델이 전혀 안바뀐 것이다. 그러니 삐걱거리고 망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현재 통신시장은 완전 포화됐다. 이동통신가입자가 4700만명으로 인구수를 넘어선다.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취임일성으로 ‘탈통신’을 선언하셨다. 탈통신의 의미는.

탈통신은 낡은 비즈니스모델을 바꾸자는 것이다. 기존의 비즈니스모델을 가만히 고수하고 있으면 남들이 치고 들어온다. 애플이 좋은 예다. 아이폰과 앱스토어를 만들어 통신사의 수익을 가져가고 있다. 통신업체가 진작에 이런 비즈니스모델을 생각했어야한다. 이런 비즈니스모델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을 다 갖고 있으면서도 변화를 하지 못했다. 통신업체들의 천리안과 하이텔은 모두 사라진 반면 네이버 등 포털이 뜬 것도 같은 이유다. 기존의 비즈니스모델로는 현재의 위치를 지킬 수 없다. 지금이라고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찾아야한다.

그러면 구체적인 탈통신사업 모델은 무엇인가.

비즈니스모델은 고객에서 나온다. 이전처럼 고객을 붙들어놓는데 주력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위험하다. 고객은 수시로 이동한다. 내 고객이라고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이제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직접 고르는 상황이다. 식당으로 치면 예전에는 공급자인 통신사가 손님이 먹을 메뉴를 결정했다. 이제는 고객이 메뉴를 결정한다. 때문에 통신업체들이 오므라이스, 순두부 등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메뉴를 다양한 가격대로 제공할 수 있는 퓨전식당이 돼야한다. 고객과 1:1로 상대해야한다는 말이다. 즉, 개개인에 다가갈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내야한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구체적인 모습은 조금 기다려달라.

ⓒ유동일 기자 eddie@
ⓒ유동일 기자 eddie@

주파수 할당이 늦어지고 있는데.

4세대(4G) 여부를 떠나 지금 당장 주파수가 모자라는 현실이다. 가입자당 주파수를 보면 경쟁사가 LG텔레콤에 비해 2배다. 그동안은 시스템 최적화를 통해 해결했지만, 이제는 주파수가 모자랄 때가 됐다.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4G 서비스로 넘어가는 것이다. 4G가 LG텔레콤의 목적은 아니다. 고객에게 보다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4G 기술로 와이브로를 선택할 가능성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가입자를 모집하는 이른바 빨래줄 통신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물론 와이브로냐 롱텀에볼루션(LTE)이냐는 서비스를 잘 하기 위한 방법론의 문제다.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LG텔레콤의 목적은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유효경쟁정책의 변화 가능성이 점쳐지는데.

규제의 기본 목적은 국가경쟁력을 키우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는 것이다. 유효경쟁정책, 비대칭규제는 통신시장의 쏠림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다. 통신업체를 똑같이 규제하면 하나의 사업자로 시장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이는 국가경쟁력 향상에도 국민복리증진에도 전혀 도움이 안된다. 산업적으로 통신업체가 3개는 돼야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유효경쟁정책이다. 그래야 시장경쟁을 통해 좋은 서비스도 나오고, 요금인하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연 통신시장이 완전경쟁체제로 가는 것이 국가적으로 도움이 될지 정부의 고민이 필요하다.

3사 통합에도 불구하고, 아직 SK텔레콤, KT와 정면대결을 펼치기는 어렵다는 것인가.

합병을 통해 LG텔레콤의 덩치가 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3위 사업자들간 합병이었다. 매출, 영업이익 등을 비교하면 LG텔레콤이 절대적으로 약체다. 서로 치고받으며 보조금 경쟁을 펼친다면 LG텔레콤이 한방에 나가 떨어진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소모적인 보조금 경쟁을 탈피, 탈통신을 통해 새로은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한해동안 통신업체가 보조금 등 마케팅비로 쓰는 돈이 8조원에 달한다. 그 돈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면 구글, 애플이 우리나라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통통신 등 현재의 통신요금을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 통신요금은 높지 않다. 다른 나라에 비해 사용량이 많은 것이지, 요금수준은 낮다. 통신요금에 대해서는 다른 시각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예컨대 어떤 공장에서 전기를 써서 제품을 만든다. 전기요금 많이 나온다고 전기사용량 줄이라고 할 것이냐. 오히려 전기를 많이써야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다. 요새는 휴대폰으로 증권거래를 한다. 이걸 직접 증권사에 가서 할 때 들어가는 교통비, 시간 등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엄청난 이득이다. 이런 관점에 통신요금을 바라봐야한다. 맨날 동네북처럼 통신요금이 비싸다고 두들겨 맞을 것이 아니라 통신업체들이 공동으로 통신활용으로 인한 생산성증대효과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 이를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

초당과금제를 도입할 계획인가.

초당과금제 도입하겠다. 다만 한달에 가입자당 500~700원 깎아주는 게 얼마나 피부에 와닿는 요금인하인지는 생각해봐야한다. 정치권에서야 요금인하 실적 만들었다고 좋아하겠지만, 소비자의 체감온도는 다를 것이다. 통신업체들이 보조금을 쓰지 않고, 그 돈으로 요금인하에 나서면 단번에 20~25%정도 요금이 떨어질 것이다. 현재의 보조금 경쟁은 제조업체, 대리점들만 살찌우는 구조다. 통신업체들이 하루빨리 보조금 경쟁을 벗어나 새로운 시장개척에 나서야한다.

LG텔레콤의 강점과 단점은.

LG텔레콤 인재들의 자질은 최고다. 다만 통신 3사간 문화가 달라 시너지가 나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또 만년 3위업체로서 주눅도 들고 자신감도 떨어진다. 직원들이 고정관념을 벗어나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도록 주력할 생각이다.

◇산관학 넘나드는 화려한 이력의 CEO

ⓒ유동일 기자 eddie@
ⓒ유동일 기자 eddie@

'KTF 초대 사장, KT 사장, 정보통신부장관, 광운대 총장...'

8년만에 통신시장으로 돌아온 이상철 LG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은 산, 관, 학계를 넘나드는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나 듀크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항공우주국(NASA)와 국방과학연구소를 거쳐 지난 1991년 KT 통신망연구소 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통신업계와 연을 맺었다.

이후 이 부회장은 통신시장에서 화려한 이력을 꽃피웠다. KT PCS사업추진위원장으로 KT의 이동통신시장 진출을 진두지휘하고, 1996년 출범한 KTF의 초대 사장을 맡았다. SK텔레콤과의 정면대결을 마다하지 않는 공격 경영으로 KTF를 2위 사업자로 성장시켰다. 1996년에는 KT 사장에 올라 초고속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을 주도했다. 2002년 정부의 부름을 받아 정보통신부 장관에 취임했다. 번호이동제 도입를 도입, 통신시장 경쟁을 강화하고, 세계 최초의 와이브로 개발 등으로 IT산업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광운대 총장을 맡아 CEO출신 총장으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 광운대를 IT특성화대학으로 자리매김시켰다. LG통신 3사 통합을 추진하던 LG그룹이 통합법인의 초대 CEO로 이 부회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지사. 이 부회장은 LG그룹의 러브콜을 받아들여 8년만에 다시 통신시장에 돌아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앞으로 직면한 현실은 그리 녹록치는 않다. KT와 SK텔레콤이라는 버거운 상대와 경쟁하면서 새로운 성장의 돌파구까지 마련해야하는 상황이다. 통신분야 전문가중 전문가로 꼽히는 이 부회장이 취임 일성인 ‘탈통신’을 통해 IT시장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며 다시 한번 ‘역시’라는 감탄사를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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