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손연기 한국지역정보개발원 원장…"풀뿌리 지역정보화 책임지겠다"

“혹시 직업이 ‘원장’ 아니신지….”
지인들로부터 이런 농을 듣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다. 받아치는 답변에도 어색함이 없다. “그러게요. 원장만 8년하고 있네요.”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직업인 사립대 교수직을 박차고 나와 8년째 ‘원장’ 직함을 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100퍼센트 농담이라고 할 수도 없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KLID) 손연기(57) 원장(사진)얘기다.
‘교수 사직’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기관장을 자처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사회에 나와 첫 발을 디딘 한국정보문화센터(한국정보문화진흥원 전신)에 있을 때 진 ‘빚’ 때문이다. 당시 IMF 금융위기 사태 여파로 구조조정을 하면서 후배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며 들었던 죄책감은 늘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숭실대 교수로 가 있던 중 다시 원으로 돌아와 조직을 맡아달라는 정부의 부름을 받은 그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아내가 말렸지만 휴직계가 아닌 사직서를 냈다. 이 얘기는 IT업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된다.
정보화 업무에 파묻혀 산지 20년. 실력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에 띄는 법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3개 정부에서 기관장을 달았다. 정보화 업무에 발을 들여놓은 김대중 정부 시기까지 치면 이번이 그가 겪은 4번째 정부다. 한국 정보화의 최전선을 자처한 한국정보문화진흥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 1·2대 원장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 정보문화의 기틀을 닦은 장본인이라 칭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공공정보화 부문의 대부로 불리는 손 원장이 다시 ‘원장’으로 복귀한 것은 6년 만. 지난 2월 지방행정 정보화를 담당하는 개발원 4대 원장으로 돌아왔다. 청계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KLID 18층 집무실에서 손 원장을 만났다.
- 개발원이 뭘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예, 우리가 숨어서 일하는 기관도 아닌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발원의 역사는 제법 오래됐어요. 2003년 자치정보화조합 형태에서 출발해서 전자정부법 72조에 따라 2008년에 한국지역정보개발원으로 이름을 바꿨죠. 우리가 하는 일을 아주 간단히 말하면 지방정부 IT시스템을 관리하고 운영해서 지역 간 정보격차를 해소하는 일입니다. 여기야 말로 ‘풀뿌리 정보화’를 위해 일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죠.
- 취임하신 지 얼마 안돼 공공아이핀 해킹사건이 터졌습니다.
▶공공아이핀 해킹은 시스템 프로그램 설계상의 오류가 원인이었습니다. 보통 시스템을 5년 정도 주기로 바꾸는데 공공아이핀 시스템은 5년 주기를 이미 벗어났고 그만큼 노후화돼 있었습니다. 해킹사고가 났을 때 개발원에서 먼저 인지하고 게임회사 3곳에 통보해서 아이디 발급을 차단하면서 사태 수습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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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아이핀을 부정발급 할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것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현재 시점에서 얘기입니다. IT에서 보안이라는 것이 창과 방패의 개념과 같습니다. 또 언제 새로운 기술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완벽하게 부정발급을 차단했다고 단언하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4대 정부' 거친 '정보통'…韓 IT서비스 들고 세계로 나선다
교수직까지 버릴 정도로 자리 욕심 없는 ‘그’지만 딱 하나 욕심내는 것이 있다. ‘일’이다. 손 원장은 지방행정정보화를 중심으로 전자정부의 한 축을 담당했다면 앞으로는 지역정보화까지도 아우르는 역할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보화에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경제를 살리고자 만든 정보화마을 사업에 팔을 걷어붙였다. 최근 국내 온라인 쇼핑몰과 연계를 시작으로 중국 온라인 쇼핑까지 손을 뻗었다.
-정보화마을이 생긴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성과가 났나요.
▶정보화마을은 제가 숭실대 교수를 할 때부터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습니다. 지금은 도·농간 정보격차 해소 차원을 넘어서 실질적으로 지역의 수익창출을 위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11번가’, ‘쿠팡’과 MOU(양해각서)를 맺고 온라인으로 정보화마을 상품을 사고팔 수 있도록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정보화마을 온라인 판로를 개척하는 셈이군요.
▶우리가 보는 곳은 국내만이 아닙니다. 18일 중국 ‘에이컴메이트’라는 대형 쇼핑몰과도 MOU도 맺었습니다. 중국을 시작으로 해외 동포들이 있는 한인회까지 공략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보화마을은 제가 하려는 것 중 일부입니다. 이런 업무를 통해 정부 3.0시대에 맞는 행정효율화와 함께 국민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 원대한 최종 목표입니다. 국민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방향을 찾아주는 역할을 해보려고 합니다. 각 지방정부에서 들고 있는 데이터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일 같은 것이죠. 정부 3.0 데이터 개방 일환으로 다음 달 시도·새올시스템 데이터베이스를 개방할 예정입니다. 업종별, 지역별 상권에 대한 정보를 손쉽게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죠.
-우즈베키스탄과도 협력이 잘 이뤄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이 최근 지역정보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에게 자기 나라 지역정보화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짜달라고 요청했고요. 우즈베키스탄을 발판으로 옛 소련 연방 속했던 독립국가연합(CSI)은 물론이고 아프리카, 동유럽 등으로 발을 뻗으려고 합니다. 해외 지도자들이 ‘스마트파워’ 얘기를 많이 하죠. 우리나라가 진짜 잘 하는 IT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 스마트파워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선진 IT를 배우기 위해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를 찾았지만, 이제는 그 나라 공무원이 우리나라에 배우러 옵니다. 이거야말로 통쾌한 순간이죠.

◇"세계 최고 스마트폰 쓰는 국민답게 사이버문화도 최고로 만들어야"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공공기관장으로 가려고 힘들게 얻은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다. 내공이 보통 아니란 얘기다. 국내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정보사회학을 파고들었다. 학부부터 다시 시작해 박사까지 마쳤다.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인터뷰하는 기자 면전에 ‘자극적인 주제를 뽑는 언론이 너무 많다’고 대놓고 말한다. 이유는 하나다. 정제된 사이버 문화를 확립해야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보화는 주로 IT 기술과 시스템 측면에서만 얘기돼왔습니다. 사회문화적인 변화를 동반하는 정보화의 필요성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습니다.
▶(IT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으로서)제일 반가운 질문입니다. 우리나라는 테크니컬-푸시(기술적인 추진력)만 앞서가고 사회적으로 그 힘을 견인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댓글을 보면 막말하는 정치인과 다를 게 하나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들고 다니는 휴대기기는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의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좋은 기기들의 기능을 정말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봐요. 사이버 문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할일이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개발원이 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 있을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기업에서는 IR(기업설명회) 같은 것을 하면서 열심히 홍보하잖아요. 그런데 왜 공공기관은 자신들이 한 일을 알리지 않는 걸까. 경험에 비춰보면 책상에서 읽은 데이터는 머리로는 이해가 되도 가슴으로는 절대 와 닿지 않더라고요. 사실 정보화 사업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거든요. 올해 안에 버스투어 같은 것도 해보려고 합니다. 각 분야 엔지니어와 담당 공무원 등을 한 버스에 싣고 직접 현장 점검에 나설까 계획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