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 방송된 애플 '아이폰11 PRO' TV 광고엔 신인배우 고윤정이 모델로 출연해 애플 로고가 선명한 아이폰 카메라의 매력을 누누이 강조한다. 시청자라면 누구나 애플이 제품 홍보를 위해 만든 광고라고 생각하지만 SK텔레콤 광고다.
말미에 '세상 모든 0을 위한 아이폰11 PRO, 사전예약은 SK텔레콤에서'란 광고 문구가 화면을 스치듯 지나가고 나서야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시안도 애플이 정하고 홍보 대상도 애플과 아이폰이지만 정작 광고비는 이동통신사가 낸다. 이른바 '애플 갑질'의 대표 사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8일 국내 이동통신 3사에 광고와 무상수리 비용 등을 떠넘긴 애플코리아(애플)에 대해 자진 시정의 기회를 주기로 했다.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로 조사를 받아 온 애플이 이통사와 거래 관계를 자발적으로 개선하고 상생하겠다며 낸 '동의의결' 신청을 받아들여 절차 개시에 나선 것이다.
통신업계에선 '법적 제재'가 아닌 '자진 시정'인 만큼 애플에 '면죄부'를 준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애플의 진정성과 불공정 거래 개선 의지에 의문을 표하는 의견도 많았다. "애플의 파워를 감안하면 갑질 근성이 쉽게 사라지긴 어려울 것"(이통업계 관계자)란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애플이 한국 시장에 진출한 건 아이폰3GS를 출시한 2009년이다. 진출 초기부터 TV·옥외 광고비와 매장 내 전시·진열비, 수리비, 지원금 등을 이통사에 떠넘기는 갑질이 시작됐다.
이통업계 관계자는 "애플은 현지 진출 때 2~3위 이통사를 공략해 '약탈적 조건'으로 비밀유지 계약을 맺은 후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까지 자사 이익을 극대화하는 계약을 관철하는 전략을 쓴다"며 "10년 넘게 '갑의 횡포'에 시달려 왔다"고 했다.

'바잉파워'(buying power)를 무기로 한 애플의 갑질 사례는 천태만상에 가깝다. 업계 관계자는 "아이폰은 최소 발주 물량이 있어 수요와 무관하게 일정 물량을 받아 와야 한다"며 "재고가 남으면 오롯이 이통사의 손실로 돌아온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거나 재고가 많은 제품을 떠안는 조건으로 신제품 물량을 할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통신사 입장에선 장사를 하려면 손실을 감수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재고 폰을 받아와야 한다는 얘기다.
광고·마케팅 비용은 온전히 이통사의 몫이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광고 시안과 문구까지 일일이 정해주면서 이통사 돈으로 애플과 아이폰 광고를 한다"며 "매장 디스플레이 하나하나까지 자사 디자인 철학을 반영하고 심지어 보도자료 문구까지 정해준다.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아이폰은 고장나지 않는다"는 논리로 수리비를 이통사에 떠넘긴다. 소비자 입장에서 제조사로부터 당연히 받아야 할 무상수리 서비스를 이통사가 대신하고 있던 셈이다. 이통업계에선 애플이 자체 '교환비율'을 정해놓고 불량품을 쉽게 교환해주지 않는다는 말도 나온다. 다른 제조사는 박스 개봉 후 제품에 문제가 발견되면 새 제품으로 바꿔 준다. 이통업계 관계자는 "문제가 있는 단말기가 있어도 이통사나 대리점에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소비자가 단말기를 살 때 제조사와 이통사가 나눠 부담하는 지원금도 애플은 전혀 내지 않는다. 삼성과 LG 등 국내 제조사 단말기와 달리 아이폰에 유독 '짠물 공시지원금'이 실리는 배경이다. 이통사 한 관계자는 "분담 비율이 다르긴 하지만 삼성과 LG는 각 이통사와 '공동 기금' 식으로 재원을 만들어 지원금을 결정하지만 애플이 부담하는 지원금은 '제로'(0)"라고 했다.
애플의 횡포는 이통사들의 통신 서비스 변별력이 줄어들면서 더욱 도가 세져가고 있다고 한다. 이통업계 관계자는 "이통사 경쟁력은 애플과 삼성의 인기 스마트폰을 원하는 가격으로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물량을 가져오느냐가 결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애플의 횡포가 결국 이통사를 거쳐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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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갑질과 피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사례가 아니다. 애플은 지난 2013년 대만에서 아이폰 판매 가격 통제를 이유로 약 7억원 규모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프랑스는 2016년 애플이 통신사에 일정 수준의 발주량을 강제하고 광고 비용을 전가했다며 약 640억원 벌금을 부과했다.
2018년엔 호주에서 "애플의 AS 정책이 소비자 권익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해 74억원의 과징금을 물었다. 이탈리아에서도 애플의 불공정거래 문제가 불거져 120억원 가량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가 나왔다.
애플코리아는 공정위 결정 후 "어떤 법률 위반도 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지만, 이제는 관련 절차에서 벗어나 고객과 지역사회에 집중하려고 한다"며 "교육 분야와 중소사업자에 대한 기여를 확대하고, 소비자의 일자리 준비를 도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