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는 화학과 들어가기가 의과대학보다 어려웠죠. 지금은 웃을테지만 그때만 해도 화학과에 입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서울대 화학과 출신이라는 바이오업체 임원에게 "공부 좀 더 해서 의대에 가셨으면 지금보단 잘 살았지 않으셨겠냐"는 농담을 던지자 돌아온 말이다.
그의 말대로 80년에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유전공학과, 미생물학과, 화학과 등 서울대 이공계 커트라인이 의대보다 높은 경우가 심심찮게 나왔다.
그러나 1990년대말 외환위기 이후에는 의대의 절대독주가 시작됐다. 이과 상위 1% 안에 드는 학생들은 사실상 의대의 몫이다.
한 의과대학 교수는 "IMF 이후 경제적 풍요를 누리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부모들이 라이선스(면허증)가 있는 직업이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것"이라며 "이때부터 의대의 인기가 폭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예전만 못하다는 말도 있으나 여전히 `최소한의 성공`이 보장된 직업이 의사라는 점엔 이견이 없다. 일단 환자 치료라는 '독점권'을 갖고 있으니 경쟁은 치열해도 수익은 보장되는 셈이다.
오랜 수련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라는 타이틀까지만 획득하면 부와 명예를 움켜쥘 기회가 많다. 문제는 현재 의사들이 사회에서 부여한 '권한' 만큼 `공적역할`에 대한 관심이 있느냐다.
과거 전자공학과나 화학과 출신들의 자부심이 컸던 건 `어려웠던 한국경제를 키워온 주역`이라는 사회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독점권을 보장해준 사회에 의사들이 기여하는 부분은 크지 않아 보인다.
'생명을 살리는' 의사보다는 돈과 출세만을 탐하는 후배들이 많다는 게 의대 교수들의 한탄이다.
한국은 졸업 후 진료를 맡는 임상의로만 진로를 정하는 경향이 짙다. 제약회사나 바이오회사에 근무하는 의사가 10만명 중 100여명에 불과하다는 건 그 방증이다.
반면 해외 선진국에서는 '의사=진료'라는 유일등식만 있지 않다. 글로벌 제약 바이오회사를 방문하면 소속 연구의사의 수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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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현업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이 신약개발에 도움을 주고, 이는 관련산업을 넘어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과거 전자공학이나 화학분야의 인재들은 산업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데 원동력이 됐다. 한국도 이제는 의사들을 사회적 기여가 큰 인재로 교육하고 키워볼 필요가 있다"는 약대 교수의 말을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