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오늘…'아시아의 슈바이처' 영면하다

10년 전 오늘…'아시아의 슈바이처' 영면하다

박성대 기자
2016.05.22 05:45

[역사 속 오늘]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총장 타계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총장 생전 모습./사진=머니투데이DB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총장 생전 모습./사진=머니투데이DB

국제보건의료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인이 2003년 5월 유엔 산하 기구 수장으로 깜짝 선출됐다. 7차례의 표결을 거치는 접전 끝에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 선출된 이종욱 박사는 그렇게 세계인의 건강과 보건을 책임지게 됐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우리가 바로 그 누군가입니다." 2003년 11월 WHO 대표단 세계회의에서 그가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이 총장은 당선 후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말라리아 등 전염병과 에이즈 예방사업에 전력을 기울인다.

당시 한국인 최초로 연간 예산 22억달러, 직원 5000여명에 이르는 유엔 산하 최대 국제기구 수장에 취임한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의료 외길은 대학시절부터였다.

대학 재학 시절 내내 경기 안양 나자로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를 진료하던 그는 이곳에서 가톨릭 신자로 봉사활동을 온 동갑내기 일본인 가부라키 레이코 여사를 만나 결혼한다.

1981년엔 레이코 여사와 함께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인 미국령 사모아로 건너가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당시 사모아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의료의 혜택을 전혀 누릴 수 없었는데, 그런 그를 사모안들은 '아시아의 슈바이처'라 불렀다.

그는 이후 1983년 미국 하와이로 건너가 WHO와 인연을 맺고 평생을 의료 봉사활동에 헌신한다. 이 총장은 WHO에서 남태평양 한센병퇴치팀장, 서태평양지역사무처 질병예방관리국장, 백신면역국장, 결핵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다.

특히 백신국장 재직 당시 소아마비 유병률을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리는 성과를 거두면서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기도 한다. 이 총장은 사무총장이 된 뒤 1년에 30만km를 넘게 이동하며 지구촌 구석구석 가난하고 병든 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공중보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그는 300만명의 에이즈 환자들에게 치료제를 공급하자는 '3 by 5' 캠페인을 전개하고, 신종 인플루엔자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국제보건규칙을 30년 만에 개정하기도 한다. 대유행병 6단계 로드맵 구축, 전세계적인 금연운동도 WHO 차원에서 전개했다.

이 총장은 직원 1만명이 넘는 유엔 기구를 이끌면서 보건 문제를 글로벌 이슈로 만드는 정치력도 보여줬다. 여기에 빌 게이츠를 포함한 세계 유명인사들로부터 에이즈를 포함한 각종 질병 퇴치 기금을 받아내면서 기금 모금 능력도 발휘해 WHO의 여유있는 운영을 가능케했다.

그렇게 일에만 몰두했던 이 총장은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뒤를 이을 유력한 차기 유엔 사무총장 후보 가운데 한 사람으로 거명되기도 했지만 2006년 5월 22일 예정됐던 세계보건총회 전날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국제사회 지도자들이 그의 타계를 애도하는 성명을 잇따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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