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최근 글로벌 바이오 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약가 인하를 압박하는 '최혜국대우(MFN) 약가 정책' 행정명령에 지난 5월 서명했다. 이어 이달 수입 의약품에 최대 200% 수준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다.
최근 현장에서 만난 많은 제약·바이오 산업 종사자 역시 이 같은 우려에 공감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렇게 반문했다. "그런데 '법차손'은요?"
법차손은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의 줄임말이다. 한국거래소는 상장 기업이 최근 3년간 2회 이상 법차손이 자본의 50%를 초과하면 관리종목(기술특례상장 기업은 3년 유예)으로 지정한다. 관리종목 기업은 지정 사유를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동안 주식시장에 상장한 많은 바이오 기업이 이 법차손 요건 때문에 애를 먹었다. 바이오 기업에 미국의 정책 변화 등 불확실성이 아직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 리스크(위험요인)라면, 법차손은 지금 당장 회사의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눈앞의 문제다.
이재명 정부는 바이오를 중점적으로 육성할 산업으로 꼽았다. 정치권에선 바이오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법차손 요건을 완화하거나 예외로 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만난 다수 바이오 산업 종사자가 법차손 규제가 바뀔 것 같냐고 물은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현재 법차손 요건을 수정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바이오 산업 종사자들은 혁신기술 연구를 가로막는 법차손 규제를 이제 손볼 때가 됐다고 토로한다. 지금은 미국의 제도 변화와 중국의 급성장, 인도네시아 등 후발주자의 추격, 유럽과 일본 등 전통 강자의 경쟁력 강화 등으로 K-바이오가 도약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할 변곡점이다.
특히 법차손은 바이오의 핵심인 연구개발(R&D)을 주저하게 하는 규제란 점에서 뼈아프단 지적이다. 연구개발에 투자할수록 비용 부담이 커져 자기자본 대비 법차손 비율이 오를 수밖에 없다. 실제 여러 바이오 기업이 법차손 요건 때문에 신약 파이프라인의 임상연구를 축소하는 등 연구개발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해외에선 찾기 힘든 법차손 규제로 외국 투자자가 한국 바이오 기업에 투자하길 꺼린단 문제도 있다.
비단 바이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인공지능(AI)과 양자기술, 로봇, 우주 등 첨단과학 분야에서 혁신기술 연구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이 같은 혁신기술을 연구하는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기술특례상장이다. 그런데 법차손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연구개발을 주저하는 기업이 많다면, 과연 취지에 맞는 규제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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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해외에선 미래산업인 바이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나라마다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며 "지금 K-바이오를 키우지 못하면 기회를 잃을 수 있단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고, 법차손 같은 혁신기술 연구를 가로막는 규제 완화를 포함해 적극적인 육성 정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