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때도 분만실 지켰는데…" 기소 후폭풍, 산과 의사 멸종될까

"의정갈등 때도 분만실 지켰는데…" 기소 후폭풍, 산과 의사 멸종될까

정심교 기자
2025.09.14 10:21

신생아가 출생 직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당시 분만을 담당했던 산부인과 의사 2명이 불구속 기소된 사건을 계기로 산과 의사가 멸종될 것이란 성토가 의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지난 1년 반 넘는 의정 갈등 상황에서도 산과 의사들은 병원 분만실을 근근이 지켜왔는데, 형사처벌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버틸 의사는 없을 것이란 게 산과 의사들의 토로다.

14일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전국 의대 40곳 가운데 산과 교수가 아예 없거나 1~2명에 불과해 산과학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21곳(5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올 하반기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은 48.2%에 불과했다. 서울 대학병원 산부인과 A 교수는 기자에게 "산부인과 중에서도 부인과 질환은 늘고 있어서 '부인과'는 그나마 유지되지만, '산과'는 인기가 없다"며 "출생률이 준 데다, 분만 시 이번 사건처럼 자칫 민·형사 처벌받을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앞서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산부인과 전문의 A씨는 자연분만으로 출생한 아기가 출생 직후 뇌성마비 진단을 받은 사건으로 담당 교수와 함께 소송이 제기됐다. A씨는 당시 전공의 신분이었고, 민사 재판에서 6억5000여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형사 재판은 경찰 조사 단계에서 무혐의 결론이 났지만, 검찰이 불구속 기소하면서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젊은 산과 교수 24인 일동은 13일 '벼랑 끝에 선 젊은 산과 교수들의 성명서'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분만을 업(業)으로 삼고 고위험 산모, 태아를 돌보는 일상 업무 속에서 러시안룰렛 같이 발생하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가 형사 기소의 대상이 되는 현실 앞에서 깊은 충격과 절망을 느낀다"고 했다.

대한모체태아의학회에 따르면 뇌성마비는 생존아 1000명당 약 2명에게서 나타나는데, 분만 진통 과정 자체와 관련된 경우는 의학적으로 5%에 불과하다.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박중신 회장은 "분만은 숭고하지만 본질적으로 매우 큰 위험성을 지니는 의료 행위"라며 "의사가 충분히 주의해도 불가항력적으로 산모·신생아가 사망하거나 뇌성마비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박중신 회장은 "뇌성마비 대부분은 몇 시간 동안의 분만 진통 과정에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임신 기간 태아가 머무는 약 7000시간의 자궁 내 환경과 관련된 것이라는 의학적 증거가 이미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기소 처분은 우리나라에서 자연분만을 꺼리게 해 제왕절개 수술률을 불필요하게 늘리고, 어려운 분만 환경 속에서 자연 분만에 최선을 다하려는 의료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역사적 오류로 남을 것"이라고 규탄했다.

해외에선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이 이뤄질까.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영국·미국 등 영미법 국가에서는 고의·중과실이 아니면 의료행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독일·스위스 등 대륙법 국가에서도 과실범 처벌 규정이 있지만, 의료행위는 고의·중과실이 아니면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법체계가 가장 비슷한 일본은 2016년 이후 통계가 확인되는 2021년까지 의료행위를 형사 기소한 사례는 없었다.

대한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선 분만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항력적 손상, 단순 과실에 대해 의사를 형사 기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형사 사건화는 고의, 극심한 중과실이 있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한다. 또 배상하더라도 민사적 합의, 무과실 보상 기금을 통해 해결된다. 대한산부인과학회 김영태 이사장은 "우리나라처럼 분만 관련 사고가 형사 기소로 이어지는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며 "이는 필수의료를 지탱하는 산과 진료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 대학병원 산과 B교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30대이지만,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주말에도, 한밤중에도, 가족과 식사하다가도 호출받으면 병원으로 달려간다. 그는 "잠들 때조차 휴대폰 벨소리를 크게 맞춰 두고, 산모·아기가 무사하기를 빌며 눈을 감는다"며 "힘들지만 버텨온 건 전국 각 대학병원에 1~2명밖에 남지 않은 동료들을 향한 전우애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산과 C교수는 "1년 반가량 이어진 의정갈등의 혼란 속에서도 애써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고 자기 최면을 걸며 분만실을 지켜왔다"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 달라졌다. 분만과 제왕절개 수술은 매일 밤낮없이 반복되지만 내 모든 말·기록·행동 하나하나가 민·형사 소송의 '씨앗'이 된다는 게 두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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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 기자

안녕하세요. 머니투데이 바이오부 의료헬스팀장 정심교입니다. 차별화한 건강·의학 뉴스 보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現 머니투데이 바이오부 차장(의료헬스팀장) - 서울시의사회-한독 공동 선정 '사랑의 금십자상(제56회)' 수상(2025) - 대한의사협회-GC녹십자 공동 선정 'GC녹십자언론문화상(제46회)' 수상(2024) - 대한아동병원협회 '특별 언론사상'(2024) - 한국과학기자협회 '머크의학기사상' 수상(2023) - 대한이과학회 '귀의 날 언론인상' 수상(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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