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불명예 CEO의 끈질긴 생명력

[기자수첩]불명예 CEO의 끈질긴 생명력

조철희 기자
2010.02.09 14:52

존 테인 전 메릴린치 최고경영자(CEO)가 중소기업전문 대출기관인 CIT의 새 수장으로 월가에 돌아왔다. 지난해 1월 '불명예 퇴진' 후 불과 1년 만의 '화려한 롤백'이다.

일단 업계 안팎에선 그가 이제 갓 파산보호 상태에서 벗어난 CIT를 살릴 '긴급 소방수'로 보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CEO, 골드만삭스 사장 등 쟁쟁한 이력을 지닌 만큼 뛰어난 경영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스스로 취임 일성으로 월가 복귀가 '흥분되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금융위기를 전후로 자리를 잃고 아직 방황 중인 몇몇 CEO들의 흥분감은 더할 것이다. 일각에선 테인의 복귀를 '불명예 퇴진 CEO 군단의 복귀 러시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또 한편에선 이를 두고 금융위기의 교훈을 전혀 되새기지 못한 일이라고 비판한다.

불과 1년 여 전 그가 벌인 불미스러운 일들의 여운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BOA와의 합병 과정에서 메릴린치의 부실 규모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의혹, 합병 절차가 마무리되기 직전 임직원들에게 보너스를 퍼준 사실, 122만 달러의 호화 사무실 논란 등을 그냥 덮고 가도 될지 의문이다.

게다가 최근 뉴욕 검찰이 케네스 루이스 BOA 전 CEO와 조 프라이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메릴린치 인수 관련 사기혐의로 기소한 상황에서 이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는 그의 복귀는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CEO 선임은 전적으로 회사의 몫이지만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 파묻힌 기업에서 할 수 있는 적절한 인사인지 의문이다. 테인은 또 지난해 포천이 선정한 '최악의 CEO'라는 불명예까지 안고 있다. 여론의 평가와 CIT·업계의 평가가 이렇게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도 비정상적인 면이다.

이쯤 되면 그의 생명력이 무척이나 질기다고밖에 볼 수 없다. 아직도 미국에선 직장인으로서의 생명을 잃은 이들이 10명 중 1명이나 된다. 법적 책임이 없는 전문경영인에게 도덕적 뭇매를 때리는 것이 지나치다고도 할 수 있다. 실패한 CEO라도 다시 기회를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여러 실패한 CEO들이 가볍게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고, 쉽게 기회를 다시 잡는 것을 보고 쓴소리를 되삼키긴 어려운 일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